무기수와 13년째 우정의 편지 나누는 경찰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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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경찰서 중앙지구대장 민병규(56)경감과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순천교도소에 복역중인 박모(42)씨가 13년째 편지를 주고받으며 ‘아름다운 인연’을 맺고 있다.

민경감은 “누구든지 자기가 처한 곳에서 얼마든지 좋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 동안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절 일으켜 세우셨다”고 털어놨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민 경감이 여수경찰서 수사계장으로 유치장 관리감독 업무를 보던 1992년 초. 민 경감은 당시 20대 중반의 나이에 강도·살인혐의로 구금된 박씨에게 말없이 성경책을 건넸다. 유난히 불안해 보였던 박씨가 어둠 속에서 길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후 박씨는 무기징역이 확정돼 대구교도소로 이감됐고 소식도 끊겼다.

박씨에 대한 기억이 사라질 무렵인 1995년 여름. 민경감은 박씨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엔 박씨의 유일한 혈육인 아버지를 찾아달라는 부탁이 실려 있었다. 민 경감은 수소문 끝에 박씨의 아버지가 오래 전에 재혼해 제주에서 새 가정을 꾸렸다는 사실을 알아 내고 답장을 써 보냈다. 민 경감은 “당시 박씨가 아버지를 다시 만나기 어려운 사정에 크게 낙심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매달 한 두 차례 편지를 주고 받았고 민 경감은 박씨가 수감된 대구와 군산,순천 교도소를 찾아 직접 면회를 했다. 틈틈이 교도소 측에 돈을 맡겨 박씨가 물품을 사 쓰도록 했고, 뒤 늦게 이런 사실을 안 주변의 동료들도 힘을 보탰다.

민 경감은 그 동안 박씨로부터 받은 편지 100여 통을 꺼내 볼 때 마다 박씨가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모범수로 생활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민 경감은 “그 사람이 ‘기회가 주워진다면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며 희망을 얘기할 때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며 “경축일마다 특별사면이 기다려질 정도로 우의가 쌓였다”고 말했다.

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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