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산물이 오름세 주도/두달 고물가 자세히 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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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파등 4품목 가장큰폭 상승/올 변수는 서비스료·공산품
잘못된 의학 상식으로 병 치레를 하다가는 오히려 병을 키우고 말듯이,경제현상을 걱정할 때도 문제를 제대로 보는 것이 걱정 자체보다 더 어렵고 중요하다.
특히 대중심리가 끼어들기 쉽고,따라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경제문제인 물가를 걱정할 때는 더욱 그렇다.
올들어 두달 동안 2.4%나 올랐다는 물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발견해 낼 수가 있고,과연 정말 걱정할 일들은 무엇인지도 자연히 알 수가 있다.
◇오른 물가의 얼추 절반은 농축수산물의 값 오름세다.
2월까지의 소비자 물가 상승 2.4%중 1.07%가 농축수산물 때문이었는데,한 번 오르고 나면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 임금 등과는 달리 농축수산물 값은 작황에 따라 다락같이 올랐다가도 뚝 떨어지는 등 변덕이 심하다.
그렇다면 상당 부분 농축수산물 때문에 오른 물가를 가지고 올해 전체의 물가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또 지난해의 냉해로 생산이 크게 줄었던 양파 등을 미리 수입해 대비하기만 했더라도 이번 물가 걱정의 3분의 1은 덜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파·양파·시금치·쌀 등 4품목만의 값 상승이 전체의 3분의 1인 0.79%였기 때문이다.
◇공공요금은 작년보다 되레 안오른 편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전체 물가상승 1.5%의 3분의 1이 넘는 0.53%가 공공요금 인상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공공요금이 0.38% 밖에는 전체 물가상승을 불러오지 않았다. 결국 올해의 물가걱정을 키운 주인은 지하철·버스 등의 공공요금이 아닌 것이다.
◇입시학원비 인상 하나만으로도 유가 인하분을 다 까먹었다.
오랜만에 2월 중순부터 유가가 내렸지만(0.4%) 전체 물가에는 0.01%의 하락요인이 됐을 뿐이다. 반면 입시종합반 학원비 인상(2.2%)은 0.01%의 전체 물가 인상요인이 됐다. 개인서비스 요금의 오름세는 이처럼 전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공공요금과 유가를 빼고는 다들 지난해보다 올해의 오름세가 더하다.
농축수산물은 물론,공산품·연탄·집세·개인서비스 등의 오름세가 전반적으로 지난해보다 더하다.
정작 걱정은 바로 이처럼 오름세의 높낮이를 떠나 각 부문에 물가 오름세가 퍼져나가는 조짐이 있다는 것이다.
◇통화를 급격히 줄이거나 무조건 공공요금을 억제하는 것은 물가 대책이 못된다.
지금 급작스레 통화를 조인다고 물가가 당장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되레 단기적으로는 금리 상승 등의 부작용만 키울 뿐이고,따라서 꾸준히 소리 나지 않도록 통화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물가 억제선을 지키려고 공공요금을 묶는 일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 키워서 나중으로 넘기는 것일 뿐이다.<김수길기자>
◎힘잃는 “신토불이” 호소/급등농산물­소비자이익 충돌/“계속오르면 개방반대 어려워”
물가고가 「신토불이」의 호소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이후 생산자인 농민의 편을 들어온 소비자들도 우리 농산물이 물가고를 주도하는 이상 마음을 달리 먹을 수밖에 없게 됐다.
정서적으로 시장개방을 반대하는 것이 소비자의 경제적 이익에는 어긋날 수 있다는 사실을 고물가가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의 김재옥 사무총장은 『UR이후 농민과 우리 농산물을 보호하기 위해 소비자단체들이 모두 시장개방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으나 기초농산물 값이 이렇게 오르면 더이상 개방에 반대할 수 만은 없다』고 말했다.
생산자 보호도 소비자 이익과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생산자만 생각하다보면 이번 처럼 어처구니 없는 물가고에 시달리게 된다.
더구나 이번 양파의 경우는 수입을 한다는 것이 생산자의 이익에 반하는 것도 아니었다. 양파는 늦어도 8월까지는 출하가 끝나 그 이후에는 농민들이 아닌 저장업자들이 보유 물량을 내다 팔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양파의 경우처럼 소비자 이익을 위해 수입개방을 적절히 활용하자는 주장은 아직도 「국민 정서상」 조심스럽고 결국 올해의 물가 걱정을 불러왔다.
서울대 이기춘교수(소비자경제학)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농민보호라는 명분앞에 선택의 권리라는 실리를 희생해왔다』며 『어려운 문제이지만 개방화시대에 걸맞은 소비자의식을 새로 정립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남윤호기자>
◎한발늦은 대처… 폭등 자초/농산물 수입 대응의 문제점/수급난 뻔한데 여론눈치보며 미뤄
농림수산부는 연초의 고물가가 정부의 초기 대응이 너무 안이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에 대해 일단 인정하고 있다.
또 파·양파·마늘·시금치·쌀 등 농산물 가격의 이상폭등이 매점매석 등 저장업체들의 농간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수긍하고 있다.
농림수산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경제기획원과 마늘·양파 등의 수입량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생산농민의 피해를 의식,수입량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책정했던 것이 화를 불러 일으켰다』고 말했다.
지난해 파의 재배면적은 12.5%,양파 30%,마늘은 17.9%가 줄어들어 공급부족을 예상했으나 지난 1월 말까지의 수입량은 마늘 7천t,양파 9천t에 불과했다.
여기에는 지난해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의 쌀시장 개방에 따른 농촌의 위기감도 감안됐으며 가격이 오르면 음식점 등 대량 소비처가 수요를 자제할 것이라던 농림수산부의 「원론적」 수요전망도 한몫을 했다.
그러나 수입량이 소폭으로 결정되자 저장업체들은 추가 가격상승의 기대로 출하물량을 줄여 버렸고,설날 특수와 맞물려 수요전망도 빗나가면서 가격이 폭등했다.
정부는 가격폭등이 사회문제가 되자 설날연휴가 지난 뒤에야 파 2천t과 마늘·양파의 추가수입을 농수산물 유통공사에 지시했다.
또 경찰이 본격적으로 매점매석 단속에 나서는 등 물가와의 전쟁은 시작됐다. 그 결과 지난달 20일을 고비로 출하물량이 늘어나고 가격도 내림세를 나타냈다.
한편 농림수산부는 생산농민의 직접 피해를 줄이기 위해 수입량을 줄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8월까지 출하가 끝나는 양파와 마늘의 경우 자가소비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냉장업체들이 소유하고 있으므로 이같은 농림수산부의 주장은 「과민반응」이었다는 일부의 지적도 있다.<이철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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