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 예비경관들 강훈 2년(경찰과 시민사회:13)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단속대상업체 관련자 채용서 제외/전과자출신 불러 범죄심리 수강
「빅벤」으로 유명한 런던의 국회의사당 앞.
의사당 주변을 순찰하는 「보비」와 동양계 단체관광객이 마주치자 관광 가이드가 재빨리 화제를 바꾼다.
『영국 경찰은 5피트9인치(1백73㎝) 이상의 훤칠한 키에 당당한 체격과 우수한 성적을 갖춘 인재들을 가려 뽑아 걸음걸이부터 새로 가르칩니다. 경찰이 뛰면 시민들이 불안해한다는 이유로 천천히 걸으며 순찰하는 방법을 가르치지요.』
이 말은 절반은 맞지만 절반은 틀린다. 영국 경찰은 지원자격에 키·체중 등 신체적 제한이나 성별차이를 두지 않는다.
지난해 가을 전직 보험회사원이 웨일스 경찰에 지원했다. 6피트의 키에 당당한 체격,명문고를 나온 흠잡을데 없는 젊은이였지만 경찰은 이 청년을 인터뷰 대상에서 제외했다. 퍼브(생맥주집)를 경영하는 형제가 있다는 신원조회 결과가 그 이유였다. 영국 경찰은 지원자본인은 물론 배우자·부모·형제 등 친·인척이 경찰단속대상 업소를 경영하면 선발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원칙.
20대 1 이상의 높은 경쟁률을 나타내는 홍콩 경찰의 경우도 지원서에 부모는 물론 일가 친척과 장인·장모·처남 등 인척에 이르기까지 자세한 신원을 기록하게 한다. 신원기록대상 전원에 대해 조사를 벌이는 것은 물론이다.
조사결과 누락된 기록이 발견되거나 갱단과의 관련 등 이권개입 가능성이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면」 성적에 관계없이 낙방시킨다. 부정부패의 싹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발상이다. 신원조사·인터뷰를 통과한 영국의 예비경찰관은 2년간 교육과정을 거쳐야 한다. 기초교육과정에서는 ▲법지식 ▲수사실무 ▲보고서 작성법 ▲체력단련 등 실무교육과 ▲성품교육 ▲의사소통 및 대인관계 ▲의사결정 및 기획 능력배양 ▲지도력 향상 등 전인교육과목에서 합격점을 얻어야 한다. 지난해 12월14일 취재팀이 웨일스경찰학교를 찾았을 때 퀀셋형 강의실에서 16명의 훈련생들이 「성탄 연휴를 전후한 폭탄테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법」을 놓고 토론을 벌이고 있다.
훈련생 틈에 섞여 앉은 교관은 토론과정에서 판단력·기획력·유연성·갈등조화 능력 등 네가지 항목으로 성적을 평가하고 있었다. 주어진 명령을 완수하는 능력만큼 긴급상황에 스스로 대처하는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교관의 주입식 강의는 없다.
체육관을 찾았을 때 유도를 배우고 있는 훈련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유도는 영국 경찰이 배우는 유일한 무술이란 설명에 하필 유도를 교육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태권도·가라데·쿵후 등 훌륭한 무술이 많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훈련생들이 호신술과 함께 배워야 할 것은 폭력앞에서의 인내심이다. 검토한 무술중 유도가 가장 방어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헤팅거 교장의 설명이다.
『…우리는 폭력의 위협앞에서 전문가로서 침착하게 자신을 절제할 필요가 있으며 법적 의무를 완수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무력만을 사용해야 한다….』 훈련생 교육은 경찰헌장정신을 지키는 것이 첫째다.
전인교육 만큼 경찰학교가 중점을 두는 목표는 현장중심 교육이다. 경찰학교에는 유치장·조사실을 갖춘 모의경찰서가 설치돼 있다. 훈련생들은 경찰관과 피의자역할은 물론 변호사·증인 등의 역할을 나누어 맡아 연행부터 재판까지 전과정을 소상히 익힌다.
실습과정은 복도를 끼고 모의경찰서와 마주한 시청각실에 폐쇄회로 TV를 통해 중계되며 다른 훈련생들이 평가한다.
훈련생들이 가장 골탕을 먹는 것은 범죄 피의자가 연행과정에서 교묘히 숨겨버린 범죄증거를 찾아내는 수색. 피의자역할을 맡은 훈련생들은 경찰경력 20년 이상 교관으로부터 범죄에 쓰인 칼이나 훔친 지갑을 은닉하는 방법을 미리 익혔기 때문이다.
경찰학교는 프로범죄자들이 사용하는 증거은닉수법,경찰관을 공격하기 직전의 심리상태 등을 전과자출신 강사를 초빙해 배운다. 『범죄인의 심리나 행동특성은 범죄인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학교측의 설명이다.
체육관·강의실에서 이론교육을 마치면 훈련생들은 5주간의 현장실습에 나선다. 현장실습이 끝나면 다시 학교로 돌아와 5주동안 현장실습과정의 잘못을 교정받고 다시 현장에 배치된다. 30∼35주간의 기초교육기간중에만 실습교육·재교육이 네차례 반복되고 교육단계별로 가중치를 두어 평가한다.
영국보다 더 염격한 교육으로 이름난 일본경찰학교는 한명의 순경을 길러내는데 1년9개월을 투자한다. 초임교육기간중 예비순경이 받는 교육은 일반교육 1백82시간,기본 법학 2백48시간,실무교양 5백60시간,무술교육 5백70시간,실무수습 1백76시간,행사참여 등 기타 1백84시간이다.
이 기간중 훈련생들은 3개월간의 직장실습을 거친뒤 다시 2개월간의 보수교육을 통해 잘못을 교정받고 일선에 정식 배치된다.
예비순경 교육을 마칠 때면 유도·검도의 유단자가 되고 형사·교통·경무·경비 등 모든 분야의 경찰업무를 웬만큼 꿰뚫게 된다. 훈련과정의 탈락률은 10% 수준.
『법을 집행하는 능력은 경찰관의 교육훈련량에 비례한다. 현대의 경찰관은 교육을 통해서만 끊임없이 불법에 대응해야 하는 시대의 요청에 부응할 수 있다.』 미 연방수사국(FBI) 에드거 후버 전 국장이 한 말이다.
◎수박 겉핥기식 한국 경찰교육/24주 원칙에 실제는 12주에 불과/중요한 실무·감식교육은 시늉만
우리나라 신임순경 교육은 중앙경찰학교가 담당한다. 교육기간은 24주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3만여명의 신임경찰을 뽑았던 89년부터 지난해까지 신임순경 교육의 실제 교육기간은 겨우 12주에 그쳤다. 형식적인 교육만 받은후 모두 일선에 배치된 것이다.
최대수용인원 4천명 규모(전·의경교육 포함)에 교관 83명을 확보한 경찰학교가 3만명의 신임순경 교육을 담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경찰인력 확보계획과 교육계획이 서로 겉돌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교육내용은 실무 60%,정신교육 및 체력단련이 각각 20%로 편성돼 있다. 24주동안 하루 6시간 교육을 기준으로 할 때 사건수사·피의자 신문 등 수사·형사실무교육은 48시간,초동수사 때마다 강조되는 감식교육은 12시간이 전부다. 현장실습기간은 1주동안 일선 파출소에서 순출과 검문·검색활동을 배운다. 하지만 사후 보수교육이나 실습교육에 대한 평가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교육내용중 가장 중요한 부분인 수사·형사실무교육과 감식교육 등이 부실하다. 역할분담이나 실제 장비이용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신임경찰들은 대부분 일선에 배치된후 선배경찰 어깨너머로 신문이나 조서 꾸미는 방법을 배우는 등 주먹구구식으로 근무하고 있다.
우수한 경찰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찰교육기관의 교육내용을 현장업무에 맞게 개선해야 할 것이다.<권영민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