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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폐기물 채권’들의 몰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사태가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한 신용경색이 유럽과 아시아로 번지면서 글로벌 증시가 동반 폭락하는 등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러다 세계 경제가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월가의 수리분석가에게 긴급 원고를 받는 등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더불어 혼란한 시기에 내 돈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알아봤다.


이코노미스트 현재의 서브프라임 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서브프라임 모기지 마켓이 최근 몇 년간 어떤 식으로 운용됐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란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 주택을 담보로 대출된 채권을 말하며 작년에는 전체 모기지 대출의 20% 정도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대출은 상대적으로 부실화할 위험이 큰 만큼 보통 모기지보다 높은 이자율이 적용되고 대출심사 과정도 엄격한 것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정상 모기지의 이자율 차이가 크게 줄어들고, 대출심사 과정은 약해지다 못해 아예 생략되는 경우까지 나오게 됐다. 왜 모기지 회사들이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까지 대출을 못해줘서 안달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이 질문의 일부 해답은 금융공학의 발전에서 찾을 수 있다. 1980년대 들어 월가에서는 모기지 및 기타 채권 자산들을 모아 이를 담보로 증권을 발행하는 기법들이 발전하게 됐으며, 그 결과물 중 주목할 만한 것이 모기지 자산에서 나오는 현금 흐름에 대해 차별적 우선권를 가지는 계층화된 담보부채권(Credit Debt Obligation·CDO)의 탄생이다. 예를 들어 1000개의 모기지를 모아 여기서 발생하는 현금 소득에 제일 먼저 권리를 가지는 ‘선순위 계열(senior tranche)’부터 ‘후순위 계열(equity tranche)’까지 발행했다고 하자. 설사 1000개의 모기지 중 10%가 부실화돼도 후순위 계열들의 가치만 0으로 떨어질 뿐, 선순위 계열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식이다. 위험이 큰 만큼 후순위 계열은 높은 이자율을 받게 된다. 이런 CDO는 다양한 리스크 선호를 지닌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게 됐다. 일견 국채만큼 안전해 보이지만 그보다 높은 이자율을 제공하는 선순위 계열은 각종 연기금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월가에서 ‘유독 폐기물(toxic waste)’이라 불리는 제일 마지막 후순위 계열은 공격적인 헤지펀드들에 의해 주로 소화됐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금융공학적 발전은 서브프라임 리스크에서 파생한 인덱스가 등장하면서 실제 모기지를 보유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모기지와 연관된 채권들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식으로 파생상품을 통해 서브프라임과 연결된 채권들은 실재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수십 배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될 뿐 아무도 그 규모를 계량화하기 힘들 정도다. 전체 규모 얼마인지도 몰라 이러한 체제에서 서브프라임 시장은 지난 몇 년간 크게 성장했다. 투자은행들은 파생상품을 만들어 파는 과정에서 얻는 수수료 수익 때문에 엄청난 양의 모기지 자산들을 인수하기 시작했고, 부실 위험을 즉시 다른 투자자들에게 전가할 수 있기 때문에 모기지 회사들은 대출자의 신용상태 심사를 게을리하는 도덕적 해이를 보이게 되었다. 비극의 시작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대출받은 사람들의 파산 가능성을 너무 낮게 예측한 데 있다. 최근 몇 년간 부동산이 활황을 보이는 상황에서는 모기지의 부실화가 거의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집값이 오르는 상황에서는 대출자들이 얼마든지 다른 모기지로 갈아타거나, 최악의 경우 집을 팔면 대출금을 갚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5년 말 이래 부동산이 정체 내지는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속도로 부실화하기 시작했고, 시장은 거의 패닉에 가까운 상황으로 치닫게 됐다. 서브프라임 시장이 갑자기 커진 이유는 증권화를 통해 위험을 여러 투자자에게 분산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는 오히려 위기를 넓게 확산하고 증폭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미 유럽과 아시아권의 몇몇 금융기관이 보유 중이던 미국 서브프라임 관련 채권으로 인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극심한 손실을 보았다. 현재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것은 누가, 얼마나, 어떤 식으로 서브프라임에 노출돼 있는가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서브프라임 위기가 증폭된 이유 중 하나는 모기지 파생상품들이 공개된 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되는, 이른바 유동성 좋은 자산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결과 투자자들은 자신이 보유한 파생상품의 가치를 평가할 때 시장에서 실제 거래되는 가격에 근거하기보다는(mark to market) 수리적 모델에 근거해 추정하는 경우가 많다(mark to model). 이에 따라 서브프라임 관련 자산가치의 불확실성이 극대화돼 일부 자산에 대해서는 거래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 극심한 유동성 부족 현상이 나타나게 됐다. 하지만 서브프라임과 관련해 심각한 타격을 입은 헤지펀드들은 고객의 환매 요청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큰 디스카운트를 감수하고서라도 보유 자산을 팔 수밖에 없다. 또 이렇게 형성된 낮은 가격이 다시 다른 헤지펀드들이 보유한 자산을 평가하는 데 쓰이게 되면 그들에게까지 손실을 전염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최근 BNP은행이 보유한 자산의 가치 평가 자체가 불가능한 점을 들어 서브프라임 헤지펀드의 환매를 잠정적으로 거부한 것이 마켓의 현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제 서브프라임의 충격파는 직접적으로 서브프라임 관련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들을 넘어 다른 자산들에까지 전염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일례로 7월 말에서 8월 초에 걸쳐, 수리적 모델에 근거해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헤지펀드(quant funds)들이 동시에 큰 손실을 본 사실이 있다. 수리모델에 의하면 좋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판단되는 주식들이 오히려 나쁜 가치를 지닌 주식들보다 더 많이 하락한 결과였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서브프라임과 관련해 타격을 입은, 여러 가지 자산에 동시에 투자 중이던 큰 헤지펀드들이 손실을 메우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주식들을 일제히 시장에 내놓음으로써 가격이 일시적으로 떨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또 사모펀드들이 더 이상 낮은 이자율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어렵게 돼 이들의 주요 바이아웃 타깃이었던 가치주들이 주로 타격을 받았다는 설명 또한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산시장에서 위험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계속될 경우, 신흥시장의 주식이나 정크본드 등 각종 고위험 자산들은 안전자산들에 비해 타격을 많이 받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흥시장들의 화폐가치마저 불안정해질 경우, 이른바 캐리 트레이드도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이러한 자산시장에서의 조정은 실물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모기지 대출이 까다로워짐으로써 미국 부동산 시장의 하강세가 길어지는 경우 미국 소비자들의 소비심리는 악화될 것이다. 회사채 발행의 어려움으로 기업들의 투자계획까지 차질이 빚어지는 경우, 미국의 거시경제는 물론 글로벌 경제에도 지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부실위험 다른 투자자에 전염 앞으로 서브프라임 위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열쇠는 두 가지 요인에 달려 있다고 본다. 첫째는 내년 초에 피크를 이룰 것으로 예측되는 변동 모기지의 이자율 재조정이 모기지 부실화 문제를 얼마나 악화시킬 것이냐다. 부동산이 과열 양상을 보였던 2004~2005년, 단기간에 되팔아 투자수익을 거둘 목적으로 부동산을 샀던 사람 중 상당수가 처음 몇 년간은 낮은 이자만 물다가 몇 년 후 고정이자율로 바뀌는 조건의 모기지를 택한 경우가 많았다. 이제 모기지 이자율이 급격히 올라간 상황에서 이러한 변동모기지가 얼마나 부실화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다. 둘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단기 이자율을 언제 내릴 것이냐다. 러시아 정부의 채권상환 거부로 촉발되고, 롱텀캐피털(Long Term Capital Management)이라는 거대 헤지펀드의 청산으로 절정에 이르렀던 1998년의 금융 위기는 재빠르게 이자율을 내린 연준의 정책에 힘입어 빠르게 극복됐다. 이번에도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비슷한 행동을 취할 경우 금융 부문의 혼란은 쉽사리 풀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럴 경우 버냉키 연준 의장은 그의 전임자인 그린스펀처럼 시장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유동성을 풀어 투자자들을 구해줌으로써 오히려 시장 참여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고 더 큰 위기의 씨앗을 뿌린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최원석 미국 뉴욕 JP모건 VP (wchoi71@gmail.com)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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