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핵심인사 소환 임박/「탁씨살해」 배후 어디까지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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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수사할수록 상부로 혐의 확산/모의·실행때도 가담 가능성 커
탁명환씨 피살사건의 배후세력은 어디까지 확대될까.
경찰의 수사가 진전되면서 대성교회 관계자들이 조직적으로 관련됐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 당초 「임홍천씨의 단독 범행」이라고 단정한 경찰의 추정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특히 범행직후 교회에서 대책회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27일 밝혀지면서 경찰의 수사는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경찰의 수사초점은 앞으로 「추가로 범행에 가담한 대성교회 관계자들이 있느냐」와 「이들이 사전에 범행을 모의했느냐」에 집중될 전망이다.
임씨는 검거직후 『이번 사건은 단독 범행이며 다만 범행직후 숙소관리인 이용우씨와 방송실장 송금섭형제에게 알리바이 조작 및 증거물 소각 등을 부탁했을 뿐』이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검거 이틀만에 이 교회 조종삼목사의 지휘아래 쇠파이프를 싼 달력종이의 소각작업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은 이어 범행이후 임씨가 모집사 집에 찾아갔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교회관계자 다수가 연관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더욱이 범행 10시간 뒤 교회 설립자 박윤식목사 측근이며 장로인 신귀환씨와 김·안·이모 목사 등 교회관계자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한 사실이 나타나면서 교회관계자들의 관련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신 장로는 임씨에게 도피자금까지 건네준 사실이 드러나 범행 실행은 임씨 혼자했을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범행이후 수습과정에는 교회 수뇌부 상당수가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수사가 진행되면서 관련자가 이 교회 상부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으며 관계자 규모도 역피라미드식으로 커지는 양상이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도 『갈수록 교회 고위관계자로 확대되고 있는 수사방향을 잘 지켜봐 달라』고 밝혀,대책회의에 참가한 「4인방」 뿐만 아니라 이 교회 고위간부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가 이뤄질 것임을 시사했다.
경찰은 이와함께 이들이 단순히 범행 수습차원 뿐만 아니라 범행실행 단계에 가담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중이다.
지금까지는 범행단계에 연관됐다는 구체적 증거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임씨가 범행직후 곧 바로 신 장로를 만났고 설악산에 있는 대성교회 수양관 부근으로 도피,신속하게 범행을 수습한 점 등은 교회관계자들이 미리 범행을 알고 도피처를 제공한 것이 아니냐는 경찰의 분석이다. 이와함께 경찰은 범행동기에 대한 임씨의 진술이 오락가락하고 있으며 그나마 불분명해 누군가가 임씨에게 범행을 사주했거나 지속적인 암시를 통해 신념화시켰을 부분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결국 이번 사건은 앞으로 대책회의에 참가한 「4인방」에 대한 수사결과에 따라 당초 경찰의 구도보다 훨씬 더 큰 파문을 일으키며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이규연·예영준기자>
◎신 장로 누구인가/대성교회 설립자 박 목사의 “그림자”/잡역부출신 임씨와 성장배경 비슷
경찰조사결과 종교연구가 탁명환씨(57) 살해사건에 깊숙히 개입한 것으로 드러난 신귀환장로(47)는 사건이후 줄곧 의혹의 초점이 돼온 인물. 서울 대성교회에서 잡역부로 출발,장로까지 승승장구해온 사람이다.
74년 부인 김모씨의 권유로 대성교회(당시 일석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신씨는 모범적인 신앙생활로 신임을 얻어 80년부터 교회설립자 박윤식목사(66)의 운전사로 채용된 이래 현재까지 박 목사를 그림자처럼 수행해오고 있다.
그는 운전사 신분으로는 파격적으로 89년 이 교회의 장로겸 홍보부장으로 발탁되는 등 탄탄한 위치를 굳혀 박 목사의 분신으로 불리고 있다.
지난 10여년동안 박 목사를 이단으로 매도하며 끈질긴 공세를 펼쳐온 탁씨에 대해 그가 『가만둬서는 안된다』는 등 박 목사 이상으로 과민한 반응을 보여온 것은 이단논쟁은 차치하고 박 목사에 대한 보은차원에서도 당연한 것이었다는 분석이다.
그의 대성교회 입문 이전 행적이나 탁씨 살해범 임홍천씨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다.
그러나 일부 주변사람들 사이에서는 그가 심모원려끝에 이번 사건과 같은 「중책」을 맡기기 위해 자신과 마찬가지 처지이던 임씨를 이 교회에 취직시키고 장학금까지 줘 신학대학에 다니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아니냐고 보는 사람도 있다.
임씨로부터 가장 먼저 범행사실을 보고받았고 20만원을 줘 일단 도피시켰다가 불과 하룻만에 서울로 불러올리는 등 임씨의 사건후 행적을 「조정」한데다 특히 대책회의를 소집하는 등 그의 역할로 미뤄 이같은 추측은 한층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정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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