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권리족쇄…기득권유지 발상/「선거여론조사 공표금지」에 무성한 반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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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투표결과에 영향준다” 가설 입증안돼/조사기관 공신력 높아져 실제에 근접
선거기간중 여론조사 공표를 둘러싼 논란은 조사결과의 공개가 유권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는 여야 정치권의 반대론과 어떤 명분으로도 「정치정보의 흐름」이 규제되어서는 안된다는 국민·학계 및 언론계의 찬성론으로 집약된다.
여야 선거법 협상팀은 자유로운 선거활동의 보장 등 자기들의 당리당략에 합치되는 사항에 선뜻 합의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여야는 국민의 알 권리 및 언론자유의 침해에 해당해 위헌론까지 제기된 「선거기간중 여론조사결과 공표불가」라는 「독소조항」의 존치에 합의했다.
○신인들 진출 막아
박상천의원(민주)은 『지난 미 대통령 선거당시 언론이 클린턴의 우위를 계속 발표하면서 부시가 패배하게 되었다』며 『부동표가 많은 우리나라는 부화뇌동의 위험성이 아주 크다』고 국민 우매론을 펴면서 반대의 근거를 댔다. 역시 협상을 맡고있는 민자당의 신상식의원(국회 정치특위위원장)도 『누가 몇% 이긴다는 등 여론조사 결과를 마구 발표할 경우 투표에 혼란만 초래할 것』이라고 반대했다.
이들은 소위 강자쪽에 투표하려는 유권자의 속성(밴드웨건 효과·Bandwagon Effect)을 반대의 논거로 제시한 셈이다.
반면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 및 정치전공학자들은 이같은 정치권의 우려를 정치인들의 담합에 의한 「단순한 기준」으로 반박하며 모든 정보가 유권자에게 자유롭게 제공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려대의 오택섭교수는 『강자쪽에 투표하려는 속성과 약자쪽에 동정표를 던지려는 소위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는 상쇄하게 마련이어서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정치권의 논리를 「일방기준」으로 비판했다. 오 교수는 『여론조사는 후보자의 계층·이익집단별 지지도,정강정책의 호응도 등을 제시해 유권자들이 전체의 평균인식과 맞물려 판단할 수 있는 귀중한 정보』라며 법에 의한 공표금지를 반박했다.
서울대의 강현두교수도 『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된 것은 아니나 일반적으로 유권자들이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쉽게 휩쓸린다고는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외국어대의 김정기교수는 『결과가 부당하게 왜곡될 우려때문에 발표를 전면적으로 금지시킨다는 것은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는 것』이라며 『국민들은 모든 정치정보의 흐름을 완벽히 알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또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해도 어차피 매스컴에서는 유력·압축·당선권 등의 보도를 하게 마련』이라며 『여론의 향방을 터놓지 않으면 깜깜한 동굴속에서 투표하듯 추측만 남발돼 더 큰 혼란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그는 『정치권의 기득권세력은 기존의 파도를 뒤바꾸어놓는 어떤 흐름도 감추려하게 마련』이라며 공표금지로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이 가려질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공표반대론 또는 시기상조론의 또 하나의 논거는 현 여론조사기관과 조사방법의 타당성과 신뢰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악용많다” 주장
민자당의 황윤기의원은 『전수조사가 아닌 현재의 샘플링조사는 결과에 부정확한 오류를 낳아 국민들의 판단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조사자체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민주당의 김병오 정책위의장 또한 『그간 여론조사의 공평성과 공정성이 지켜지지 못했던게 관례였던데다 이같은 악용을 야당이 막을 수도 없는 현 정치풍토에서는 공표가 다소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한양대의 이강수교수는 『대부분 전화조사에 의존하는 현 여론조사기관의 조사기법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는게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연세대의 김영석교수는 『여론조사기관의 공신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는 상황이고,조사결과 또한 실제결과와 근접해가고 있는게 현실』이라며 『필연적인 허용오차를 근거로 공교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과학의 시대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입장이다.
코리아리서치사의 한 간부는 『공표된 여론조사의 결과와 정치자금 모금정도간에는 적지않은 상관관계가 있어 왔다』며 여야 양측의 합의에 상당한 의혹까지 나타내고 있다.
92년 대선에서 투표일이후 공개됐던 주요 여론조사기관의 후보 지지율 추이는 실제결과와 큰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이미 확인됐다.
한국갤럽사의 김덕구이사는 『솔직히 80년대 중반까지 선거 여론조사 결과와 관련,안기부(중정)의 압력을 받기도 했으나 80년대 후반 이후로 외부의 압력은 전무한 상태』라며 정치권력 개입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허용
김정기교수는 『조사결과의 신뢰도문제는 그 자체로 개선의 여지나 제도적 보완을 강구할 별개의 문제지 그 이유로 결과공표를 금지한다느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다.
미일 등 선진국 대부분이 여론조사의 자유로운 공표를 허용할 뿐 아니라 최근 러시아 등 전 공산주의 국가에서까지 여론조사 결과가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찬반논쟁속에 투표일 5일∼2주전까지 조사결과를 공표하도록 하거나 권위있는 여론조사기관을 심의·선정하자는 절충안도 등장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미디어리서치사의 안부근전무,한국갤럽사의 김덕구이사 등은 『선거운동 기간내내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는게 문제가 있다면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투표일 1∼2주전까지는 허용하는 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선당시 여론조사를 담당했던 민주당의 이해찬 전 당무기획실장과 오택섭교수 등은 『국회나 학회 차원에서 위원회를 구성,여론조사기관과 종사원의 자격을 심의·공인해 신뢰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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