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까지 자행하는 광신(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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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종교연구가 탁명환씨의 살해범이 이단론이 있던 대성교회 신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성교회는 피살된 탁씨가 지난 80년대초부터 이 교회 당회장의 「이단적 교리」와 비위사실을 잇따라 폭로하자 명예훼손으로 소송중이었다. 또 탁씨는 지난 85년 자신이 당한 폭발물 테러도 이 교회의 소행이라고 믿었을 만큼 양쪽의 위험관계는 뿌리가 깊었다고 한다.
범인은 탁씨 살해가 교회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신도가 자기 교회의 교리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무참히 살해할 정도라면 교회 또한 책임을 면하기 어려우며,범행자는 광신도라는 낙인에 번명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에게 있어 종교란 무엇이며,신앙의 존재가치에 대해 새삼스럽게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는 사랑과 자비의 실천이라는 현세적 가치추구에 사회적 가치가 있을 것이며,신앙이란 믿음에 기초한 사랑과 자비의 실천을 통해 내세에서의 영생과 복락의 약속에 다름 아닐 것이다. 용서와 포용 없는 사랑과 자비가 있을 수 있는가. 법의 한계를 초월해 모든 인간의 죄를 끌어안아 용서하는 것이야말로 종교의 사명이다. 자기 교단에 비판적이고 부정적 시각을 지닌 사람이라고 해서 목숨까지 앗아버리는 배타적 극단주의가 판을 친다면 결코 바람직한 의미에서의 종교라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과거에도 허다한 사이비종교집단의 폐해가 있었다. 백백교니,용화교·동방교·섹스교 따위가 모두 종교를 빙자한 범죄 집단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집단들의 비행에 대한 사직당국의 수사는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몇년전에 발생한 오대양사건의 떼죽음은 영구미제로 처리됐다. 피살된 탁씨의 경우도 과거 두차례나 직접 피습됐고,수십차례나 테러위협이 있었지만 제대로 수사가 결실을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또 최근엔 영생교재단의 비리에 대해 지난 92년부터 제보와 진정을 받고서도 미적미적 하다 지난달에야 겨우 교주를 구속,늑장을 부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물론 종교집단의 수사에는 신앙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난점이 있긴 하다. 또 신도들의 반발이나 집단행동이 골치아픈 일임엔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탈한 신도들이 감금·폭행당하고,심지어는 신도들이 행방불명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증거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그동안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은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사이비종교의 횡포와 비리는 주로 사회 저변층의 정신문화를 파고든다는 점에서 보다 근본적이고 철저한 대비가 요망되는 문제다. 그 폐해가 사건화되기전에 국민들이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정신적 계도가 있어야 할 것이며,사건화되면 이를 철저히 수사해 재발의 뿌리를 뽑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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