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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금석지감(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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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반도에서 쌀이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3천여년 전부터란 것이 정설로 돼있다. 중국 운남에서 양자강 하류를 거쳐 북상했다가 황하유역에서 다시 동으로 이동하면서 우리나라에 들어와 주식으로 정착했다는 것이다. 이후 쌀의 흉·풍작에 따라 국민전체 식생활의 기근과 풍요가 좌우됐으며 빈부의 척도가 돼왔다.
일제의 쌀수탈전략이 본격화될 때는 모든 국민의 배를 곯았고 견디다 못해 멀리 만주로 농사지을 땅을 찾아 유랑의 길을 떠나야 했다. 쌀을 둘러싼 한과 갈등의 오랜 역사는 우리 국민의 땅에 대한 집착을 가져왔고 유난스런 부동산 선호의식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쌀을 아끼기 위해 한동안 정부는 혼식과 분식을 장려하는데 갖은 수단을 동원하기도 했다.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도시락에 잡곡이 많이 섞이지 않았다해서 매를 맞거나 학교에서 쫓겨오는 일도 있었다.
이같은 만성적인 쌀부족현상이 양적으로 해소된 것은 70년대초 다수확품종인 통일벼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지난 80년 「사상 최악의 흉년」으로 미국쌀 2천3백만섬을 긴급 수입한 이후 잇따른 풍작으로 매년 4천만섬 가까이 수확을 기록해왔다.
이처럼 쌀이 남아돌게 되자 오히려 개인별 쌀소비는 줄기 시작했다. 지난 70년 1백36㎏이던 것이 최근엔 1백20㎏에도 못미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식성이 밀가루 음식이나 동물성 단백질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이는 소득증대뿐만 아니라 혼식장려를 강조하기 위해 쌀의 영양가를 고의적으로 평가절하했던 과장홍보의 응보이기도 하다.
쌀증산에 모든 국력을 집중시키면서 잡곡생산을 등한시한 나머지 쌀은 남아돌게 됐으나 이번엔 국민들이 쌀소비를 외면하게 된 것이다. 외국에서 수입하는 잡곡소비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우루과이라운드까지 겹쳐 내년부터는 외국쌀이 밀려들어오게 됐으니 우리 쌀의 운명은 풍전등화격이 된 셈이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쌀생산량을 줄이고,앞으로는 품질위주로 생산체계를 바꾸기로 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수입쌀보다 값이 4∼5배나 비싼 우리 쌀이 지금까지의 위상을 지켜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 쌀에 대해 무한한 애착과 한을 품었던 세대도 차츰 사라져가는 시점이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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