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 둘러싼 강대국의 신경전, 북극이 뜨겁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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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06면

연구선 아카데믹 표도로프호가 유인 소형 잠수정을 북극의 바다로 내리고 있다. 이 잠수정은 4261m를 내려가 북극 밑 해저를 탐사했다. [AP=연합뉴스]

최근에는 지구의 꼭대기인 북극 지방이 치열한 싸움터로 부상하고 있다. 북극에서 신냉전(新冷戰)이 시작됐을까? 최근 뉴욕 타임스 등에 따르면 그럴지도 모른다. 120만㎢에 달하는 이곳 대륙붕을 차지하려는 주변국 러시아ㆍ미국ㆍ캐나다ㆍ덴마크ㆍ노르웨이의 영유권 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러시아, 북극점 밑 바다에 자국기로 영유권 표시

분쟁을 촉발한 것은 러시아다. 2일 러시아는 소형 잠수함을 동원, 국기를 북극점 아래에 있는 4261m 심해 바닥에 꽂는 데 성공했다. 캡슐에 담긴 국기는 부식 방지를 위해 티타늄으로 만들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쾌거를 이룬 탐사대를 이끈 아르투르 칠린가로프(68) 국가두마(하원) 부의장은 “북극해는 러시아 소유이며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100년 후나 1000년 후에도 그곳에 간 사람은 이 러시아 국기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극점 아래 심해 바닥에 러시아 삼색기가 꽂혔다. [AP=연합뉴스]

북극의 주인은 아직 없다. 러시아 외에도 미국·덴마크·캐나다가 눈독을 들여왔다.
북극 지역의 중심 해저엔 1995㎞ 길이의 로모노소프 해령(海嶺: 해저 산맥)이 지나간다. 러시아의 주장에 따르면 이 해령은 시베리아와 대륙붕으로 연결된다. 이 주장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면 러시아는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영유권을 행사할 수 있다. 러시아 학자들은 이 지역에 700억 배럴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고 추산한다. 그러나 덴마크와 캐나다는 로모노소프 해령이 러시아가 아니라 북미와 연결됐다고 주장한다.

북극해에 국기를 꽂은 러시아 탐사대원들은 열렬한 환영 속에 영웅 대접을 받으며 귀국했지만 경쟁국들은 분노했다. 캐나다ㆍ덴마크ㆍ미국은 “쇼(Show)다. 국제법적 효력이 전혀 없다”고 반응했다. 피터 매케이 캐나다 외교장관은 “지금은 14세기나 15세기가 아니다. 러시아는 스스로를 우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우리는 다른 탐험가들이 하는 그대로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따돌림은 러시아만 당하는 게 아니다. 북서항로와 관련해서는 캐나다가 ‘나 홀로’다. 북서항로는 얼음이 더 녹으면 개발할 수 있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항로다. 캐나다는 북서항로가 자국 인근해에 포함되기 때문에 자신이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미시간호를 관할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미국ㆍ일본ㆍ유럽연합은 북서항로가 공해에 속한다며 반대한다. 북서항로가 현실화되면 유럽에서 아시아로 오는 데 시일이 절반으로 준다. 희망봉을 통하면 29일, 수에즈 운하는 22일, 북서항로는 15일이다. 연간 수백억 달러의 물류비용 절약도 기대된다. 최근 국제 해운 수송량은 10~15년에 두 배씩 증가하고 있지만 파나마ㆍ수에즈 운하는 포화상태다.

갈등이 격화된 배경에는 지구 온난화와 자원 문제가 있다. 온난화의 영향하에 북극해 해빙(海氷)의 규모는 1979년 관측 개시 이래 최소 수준이다. 매년 7만㎢의 해빙이 녹아 지난 50년 동안 북극해 얼음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그 결과 북서항로와 자원개발 가능성도 높아졌다. 고유가 시대의 에너지 수요 급증을 해결할 대안 중 하나가 북극이다. 미 지질조사국은 미개발 석유ㆍ가스 매장량의 25%가 이곳에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다면 북극 지방 영유권 분쟁은 어떻게 해결될까? 낙관론은 82년 제정된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본다. 이 협약으로 북극권 국가들은 이미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인정받고 있다. 자국 연안에서 200해리 범위 내에 있는 수산ㆍ광물 자원을 탐사하고 개발할 권리를 얻은 것이다. 예외적 영역 확장도 가능하다. 해당 해저가 자국 대륙붕의 물리적 연장선상이라는 것을 증명하면 된다. 증거는 협약의 효력 발생 후 10년 내에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CLCS)에 제출해야 한다. 지질학자ㆍ법률가ㆍ외교관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다. 노르웨이는 이미 제출했고 러시아는 2009년, 덴마크는 2014년, 캐나다는 2013년까지 제출하면 된다. 유엔은 2002년에 로모노소프 해령에 대한 러시아의 영유권 주장을 과학적 근거 부족을 이유로 거부했다. 그래서 러시아는 2009년에 재시도한다.

심사 결과는 어떻게 될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 국가가 북극 지방을 독식할 가능성은 없다. 마이클 바이어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법과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신청국들의 주장이 겹치는 구역은 10% 이하일 가능성이 크다. 분쟁의 해결에는 결국 과학과 국제법뿐만 아니라 정치적 협상도 동원돼야 한다.

협상으로 안 된다면? 에릭 포스너 시카고대학 법과대학원 교수는 분쟁이 결국 힘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 그는 “러시아는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의 결정과 상관없이 영유권 확장을 강행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러시아가 국기를 꽂은 데는 그런 노림수가 있다는 것이다.

서구의 팽창 과정에서 사용된 ‘발견자 우선주의’(The Doctrine of Discovery)는 새로 발견한 영토에 대한 소유권은 발견한 국가에 귀속된다는 논리다. 현대 국제법 체제는 ‘발견자 우선주의’를 완전히 대체한 것이 아니다. 과연 그 틈새를 러시아가 노릴까?

북극 분쟁은 결국 미국이 최대 변수다. 미 정부는 1994년 유엔해양법협약에 서명했으나 상원에서 비준이 거부됐다. 150개국 이상이 비준한 조약에 아직 가입하지 않은 이유는 주권 약화를 우려하는 보수주의자들의 반대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상원에 협약의 비준을 요청했다. 오클라호마주 상원의원인 제임스 인호프 등은 협약의 비준을 “무슨 수를 써서든 저지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협약에 가입하면 알래스카의 절반 크기를 확보하고 150억 배럴의 석유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에 협약은 내년에 비준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협약에 가입하면 분쟁은 어떻게 될까? 북서항로 운영을 염원하는 캐나다를 후원하고 로모노소프 해령을 간절히 바라는 덴마크를 도와 러시아를 견제한다면 북극은 우리가 잊고 사는 세계의 꼭대기가 아니라 신냉전의 중심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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