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행복한책읽기Review] “나와 남은 다르다” 차이 인정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강신주 지음, 그린비, 296쪽
1만4900원

 우리는 늘 갈등 속에 살고있다. 아니, 인류의 역사 그 자체가 갈등의 역사다. 그래서 토인비 같은 이는 ‘도전과 응전’이란 도식으로 역사를 풀이한다. 갈등은 기본적으로 타자(他者), 즉 남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좁게는 개인 사이의 갈등에서 인종 간 갈등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고, 그 파장 역시 천차만별이다. 사사로운 주먹다짐으로부터 이혼·소송·전쟁 등이 그 결과이다.

 갈등은 속성상 선보다는 악에 가깝다. 하지만 우리는 평소 이 같은 갈등의 존재를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산다. 그리고 특별히 문제가 두드러질 때라도 해결책은 미봉(彌縫)으로 그칠 때가 대부분이다. 당장 한국이 안고 있는 남북문제라든지 한-중, 한-일 관계는 물론, 동서 지역갈등, 노사문제, 학벌문제 등만 봐도 그렇다. 그만큼 갈등을 해결하는 일은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인류역사가 갈등의 역사라면 또 다른 면에선 끊임없이 갈등해소를 모색하는 고민의 역사이기도 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숱한 재사(才士)들이 나름대로 비법을 궁리해 인류에게 제시해왔는데 여기서 소개하는책의 주인공인 장자(莊子)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갈등의 원인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지은이가 장자를 주저 없이 ‘갈등의 해결사’로 주목한 이유이다.

  무릇 모든 문제는 원인을 제대로 알면 답이 나오는 법이다. 그렇다면 갈등은 왜 생기는 걸까. 장자는 상대가 남이란 사실을 서로 인정하지 않는 데서 갈등이 비롯된다고 보았다. 여기서 남이란 나와 차이가 있는 존재이고, 남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가 추구하는 가치와 판단, 방법등 모든 영역을 포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관점은 최근 진행중인 아프간 사태와 관련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같은 분석 자체도 탁견이지만 장자는 단순한 분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처방까지 제시한다는 데 위대성이 있다. 지은이에 따르면 장자는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서로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0여 년 전 춘추전국시대에 살았던 장자의 이 같은 주장은 전쟁이 일상화됐던 당시 시대상황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저자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각종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장자에서 찾으라고 주문한다.

 지은이는 아무리 현대가 장자의 춘추전국 시대에 비해 갈등 구조가 복잡다단해졌다 하더라도 본질상 큰 차이는 없으므로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장자의 처방이 유효하다고 믿는다. 이 책이 장자를 주제로 한 지은이의 세 번째 저술인 까닭이다. 저자는 특히 이번 책이 가장 ‘종합적’이라고 자평(自評)한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장자가 제시한 ‘처방’의 구체적 내용과 실천방안이다. 지은이는 “남과의 차이를 인정하려면 선입견(成心)을 버려야 하고, 그 상태가 되려면 망각과 비움(虛)이 전제돼야 하는데, 이 모든 조건이 구비된 뒤에도 연결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없으면 궁극의 목표인 ‘소통(疏通’을 이룰 수없다”는 장자의 주장을 한 호흡의 흐름으로 엮어내고 있다. 특히 장자가 그린(?) 에피소드 중에서도 쉬운 것을 주로 고르고, 현대서양철학의 개념까지 동원해 핵심용어를 중심으로 어려운 주제를 비교적 쉽게 전달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은이는 ‘세속을 초월한 신선’ ‘노자의 똘마니’같은 장자에 대한 선입견 내지 오해를 없애 그에게 그의 철학을 되돌려 주었다고 자부한다. 전체를 3부로 연결하면서 1,2부 뒤에 각각 보조설명을 붙인 것이라든지 책 말미에 보론(補論)을 추가한 구성도 흐름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독자의 이해를 도우려는 전문가다운 배려로 돋보인다.

이만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