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과소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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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나라에서 금주령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기록을 지니고 있다. 이후 고려·조선에서도 수시로 금주령이 내려지는데,특히 영조 때는 위반자를 멀리 귀양보내거나 노비로 강등시키는 엄벌로 다스렸다고 전해진다. 이같은 금주령은 모두가 흉년이 들었을 때 곡식의 낭비를 막기 위해 내려졌던 것이다.
그러나 서양에서의 금주령은 성격이 좀 다르다. 1917년 내려진 미국의 금주령보다 무려 2백년 가까이 앞선 1736년 영국의 「진조례」(Gin Act)는 독한 술인 진의 소비가 너무 늘어나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기 때문에 제정된 일종의 금주령인 셈이다. 18세기 중엽 이처럼 독주의 소비가 급증한 것은 산업혁명의 진입단계에 들어간 영국에서 일반 평민층이 새롭게 접하게 된 불안정한 생활상태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어 영국에선 19세기 후반들어 뮤직홀(Music Hall)이란 형식의 술집이 성업한다. 술·노래·코미디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여가공간이었다.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크게 늘어난 노동자 계급들이 긴장을 해소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장소였던 것이다.
작년 한햇동안 우리나라 20세 이상 성인들이 이틀에 한병꼴로 술을 마셨다는 국세청 통계가 화제가 되고 있다. 성인중에도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과 여성들을 제외하면 술을 미시는 사람은 하루 한병 이상씩 마셨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맥주나 막걸리 같이 알콜도수가 비교적 낮은 술의 소비량이 약간씩 감소한 것을 보면 개인별 알콜 섭취량은 높아졌을 듯싶다.
지난 89년 국제통계비교에 따르면 한국인은 당시 소련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술을 많이 마시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또 어느 조사기관의 직장인 음주실태조사로는 학력이 높을수록,사무·기술직보다 관리직이 술을 더 많이 마신다는 것이다. 한국의 40대 남성 사망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통계와 함께 우리의 사회적 스트레스 강도와 국민의 술 소비량을 연관지어 분석하는 사회학자들도 있다. 「노래방」의 폭발적인 확산현상과 함께 산업혁명기 영국의 상황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술잔 돌리기,폭탄주 먹이기,술집 옮겨다니기 같은 음주습관까지 겹쳐있으니 국제적인 술장수들이 우리를 보고 군침을 흘릴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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