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관중의 화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춘추시대 관중(管仲)은 중국 역사상 최고의 재상으로 꼽힌다. 제(齊)는 산둥성의 조그만 나라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환공(桓公)을 춘추(春秋)오패(五覇) 중 첫 번째로 만든 것이 관중이다. 공자도 “환공이 제후들을 복종시킬 수 있었던 것은 관중의 활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관중을 환공은 죽일 뻔했다.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잘 알려진 대로 환공이 관중을 얻은 것은 포숙아(鮑叔牙) 덕분이다. 제의 희공(僖公)에게는 제아·규·소백, 세 아들이 있었다. 관중은 규, 포숙아는 소백의 스승이다. 제아가 양공(襄公)으로 즉위해 무도한 일을 저지르고 정사를 어지럽히자 규와 소백은 각각 외가가 있는 노(魯)와 거(<8392>)로 몸을 피했다. 정변 끝에 제에 주인이 없어지자 두 사람은 서로 먼저 제에 도착하기 위해 경쟁한다.

관중이 소백을 찾아가 형인 규보다 늦게 오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헤어져 나오던 관중은 돌아서서 활을 쐈다. 소백은 혁대 고리에 화살을 맞고 죽은 체했다. 소백은 안심한 규를 따돌리고 먼저 제에 도착해 환공으로 즉위했다. 환공은 뒤늦게 도착한 규를 죽였다. 포숙아가 관중은 살려 주라고 했다. “주군께서 오직 제나라만 다스리시려면 이 포숙아 한 사람으로 족할 것이나 천하의 패자가 되시려면 관중이 아니고는 그 일을 해낼 사람이 없습니다.”

환공은 “살을 씹어도 시원치 않거늘 어찌 정승으로 등용하라 하시오”라고 역정을 냈다. 포숙아가 말했다. “신하된 자로서 누가 자기 주공을 위하지 않겠습니까. 주공께서 그를 등용하시면 그는 마땅히 주공을 위해 활로 천하를 쏠 것입니다. 어찌 그까짓 혁대고리 쏜 것만 논하려 하십니까.” 환공은 관중을 풀어주고 재상으로 삼았다. 친구를 자기보다 윗자리에 추천한 포숙아의 우정이 감동적이지만 자신에게 화살을 날린 관중을 중용한 환공의 그릇도 예사가 아니다. 그러기에 패자(覇者)가 될 수 있었다.

한나라당이 모레 대통령 후보 경선을 한다. 중앙일보의 패널여론조사를 보면 자기가 찍은 후보가 경선에서 졌을 때 이긴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사람이 절반밖에 안 된다고 한다(8월 16일자 1면). 당이 반쪽 난다는 말이다. 경선 효과보다 지지 이탈 경향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경선 과정에 감정의 앙금이 너무 많이 쌓인 결과다. 그 앙금을 푸는 것은 결국 승자의 몫이다. 화살을 날린 관중을 죽여 분을 푸느냐, 끌어안고 패권을 추구하느냐는 그가 하기 나름이다.

 

김진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