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약해서 시킨 수영 '물개 정슬기' 키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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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18·경기고)에 이어 한국 수영에 또 하나의 희망이 떴다. 이번에는 '여자 기타지마'를 꿈꾸는 평영의 정슬기(19·연세대)다.

정슬기는 태국 방콕에서 열리고 있는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여자 평영 50m, 100m, 200m에서 모두 한국신기록을 경신했다. 50m의 경우 생애 처음으로 국제대회 이 종목에 출전해서 두 차례나 한국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마치 박태환이 2006 도하아시안게임을 통해 월드스타로 발돋움하기 전 무서운 기세로 한국신기록을 갈아치우던 양상과 비슷하다. 또 50m부터 200m까지 거리를 가리지 않고 신기록행진을 이어가는 것도 닮은꼴이다.

아시아에서는 세계 정상에 우뚝 선 평영 스타가 있다. 2002 부산아시안게임 최우수선수, 2003 세계선수권대회 2관왕, 2004 아테네올림픽 2관왕에 빛나는 일본의 수영스타 기타지마 고스케(25)다.

기타지마가 키 178㎝의 왜소한 체격인데 비해 정슬기는 키 175㎝, 몸무게 57㎏으로 서양 여자선수들과 겨뤄도 크게 밀리지 않는 당당한 체격. 한국에서 이미 적수가 없는 정슬기는 '한국의 여자 기타지마'를 꿈꾸고 있다. 방준영 유니버시아드대회 수영대표팀 감독은 "평영은 기술과 유연성이 중요해 동양인에게 잘 맞는다. 동양인이 더 유리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충분히 국제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주종목인 200m의 기록으로 볼 때 2008 베이징올림픽 메달도 꿈이 아니다.

정슬기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몸이 너무 약하고 감기를 달고 다녀서" 취미로 수영을 시작했다. 정슬기의 어머니 신미숙씨(41)는 "선수를 시킬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대회에 나갔다가 기록이 좋아서 6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수영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배영과 개인혼영을 주로 연습하다가 담당 코치가 "평영하기 좋은 체격"이라며 주종목으로 평영을 권했고, 말이 적고 내성적인 정슬기는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정슬기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그를 지도한 방 감독은 "성실해서 한눈 팔지 않고 묵묵히 훈련을 견뎌내는 게 최고의 장점"이라고 밝혔다.

방 감독은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훈련 경과가 좋아서 한국신기록을 쏟아낼 거라 예상했다. 약점이던 파워를 보완하고 스타트 훈련에 집중했다"면서 "스트로크를 줄이면서 힘을 비축했다가 막판에 힘을 쓸 수 있게 한 것도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2004 아테네올림픽 대표 탈락으로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었다가 올해 멜버른 세계선수권에 나서 자신감을 얻었던 것도 힘이 됐다. 정슬기는 이번 대회 평영 200m 경기를 마치고 감기몸살 때문에 링거를 맞으면서 100m를 준비했지만 기어이 한국신기록 경신에 성공했다.

한국 수영은 자유형의 박태환을 비롯해 정슬기(평영), 최혜라(접영), 정유진(배영) 등 각 종목별로 유망주들이 등장, 희망을 키워가고 있다. 방 감독은 "체계적인 훈련을 바탕으로 1년에 1~2개 대회에 초점을 맞춰 3개월 이상을 준비한다. 덕분에 각종 국제대회에서 유망주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최근 한국 수영이 선전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은경 기자 [kyong@jesnews.co.kr]

여자 평영 기록 비교

평영 200m : 2분24초67(정슬기·2007년 8월 11일)
2분20초54(레이즐 존스·호주·2006년 1월 2일)
평영 100m : 1분09초98(정슬기·2007년 8월 14일)
1분05초09(레이즐 존스·호주·2006년 3월 20일)
평영 50m : 32초29(정슬기·2007년 8월 9일)
30초31(제이드 에드미스톤·호주·2006년 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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