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 따이한』(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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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는 떠날 때 먼지를 떨어뜨린다/우리는 옷에서 먼지를 털어낸다/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에서/먼지를 헤치고 작은 손들을 뻗는다/타국에 사는 아버지의 손을 잡기 위해….』
어느 미국 기자가 몇년전 아시아지역에 산재해 있는 미국 혼혈인 실태를 보도하면서 인용한 미국 팝송의 한 구절이다. 미군들이 주둔했던 아시아 곳곳에는 많은 혼혈인들이 그 유산으로 남아있다. 1898년 미국과 스페인 사이의 전장이었던 필리핀에서부터 일본·한국·태국·베트남에 이르기까지 그 「우연의 열매」들은 씨앗을 뿌린 자들의 철저한 외면속에 모진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아메라시안(Amerasian)」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베트남에 1만명,한국에만 아직도 8백여명이 아버지를 모른채 살고 있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필리핀에 남긴 혼혈아인 「자피노(Japhino)」도 수천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베트남에 있는 한국인 혼혈아는 적게는 8천명에서 많게는 2만명까지 통계가 엇갈린다. 정확한 숫자마저 모르는 것이다. 월남전 종전이후 교전 적국의 자식들이라 해서 이들에게 가해진 박해와 냉대는 참혹한 것이었다. 이들에게 붙여진 「라이(트기) 따이한」이란 호칭은 그 소외의 비극을 웅변한다. 양국의 수교이후에도 이들의 방치된 신세에는 달라진게 없다. 아버지의 빛바랜 사진과 주소를 유일한 희망으로 간직하고 있지만 그 소망이 현실화되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다. 무엇보다 20여년이란 긴 세월동안의 단절과,그 단절이 만든 서로간의 거리는 한국과 베트남 사이 만큼이나 멀어졌을 것 같다.
월남전 당시 한 한국인 파월기술자와 어느 월남 여대생 사이에서 태어났던 아들이 헤어진지 22년만에 서울에서 극적인 부자상봉을 했다. 이젠 백발이 성성한 아버지가 장성한 아들을 부둥켜안고 통곡하는 모습은 분명 감격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처연하고 애잔한 느낌도 금할 수 없다. 그 긴 단절로 해서 생긴 부자 또는 부부 사이의 현실적 거리를 이들이 어떻게 메워갈 것인가에 생각이 미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으로서는 감당키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참전의 책임이 국가에 있듯이 수많은 혼혈 한국인의 안정된 생계문제도 정부차원에서 해결이 모색돼야 할 것이다. 우리마저 그들 한핏줄을 「먼지」 털듯 외면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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