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되려면 숙제많다/박의준 통일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국은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한편으론 개발도상국 지위를 유지하려 애쓰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대외 경제관계에서의 모순적인 태도도 국제화를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중 하나다.』
최근 외무부가 주최한 「국제화를 위한 개념정리와 우리의 나아갈 방향 모색」 세미나에서 통상업무 담당간부가 솔직히 토로한 고충이다.
한국의 경제력이 점차 커지면서 한국이 과연 선진국이냐,개도국이냐 하는 논란은 최근 국내보다 국제사회에서 먼저 일고 있다.
유럽연합(EU)은 그동안 일관되게 한국이 산업구조가 고도화돼 전기·전자·중공업 등의 수출비중이 높은데다 국민소득도 자신의 회원국인 아일랜드·포르투갈 등 보다 높다는 이유로 한국을 개도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EU는 작년말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과정에서 반덤핑·보조금 상계관세 등에서 한국을 개도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명기할 것을 제의한데 이어 올해도 이 문제를 계속 거론할 전망이다.
그리스는 아예 한국을 선진국으로 구분해 대한무역정책을 EU에 건의하고 있다.
한국을 선진국으로 모시려는 태도를 보이는 곳은 비단 EU뿐만 아니다.
미국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이 금융시장 개방을 선진국 수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유엔 등 국제단체나 후진국들도 한국을 선진대열로 보고 손을 자주 내밀고 있지만 우리의 지원규모는 중진국 수준에도 못미치고 있다.
객관적인 정황에서 한국이 선진국이냐는 정의에는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국제사회는 한국을 개도국으로 인정할 경우 일반특혜관세(GSP) 등 많은 혜택을 부여해야 하기 때문에 한사코 선진국으로 격상시켜 주려는 성의(?)를 보이고 있다. 국제사회가 한국을 선진국 대우하려는 것이 기분나쁜 것은 결코 아니지만 우리가 정말 선진국 대우를 받을 「실력·의식·제도」를 갖고 있는지는 곰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가 개도국이냐,선진국이냐의 판단은 개별국가 스스로 해야할 일이라면서 96년으로 예정된 OECD 가입까지는 개도국 지위유지를 선호하는 것도 이같은 「우리 내부의 능력」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개도국을 서둘러 졸업해 선진국들과 맞서 치열한 경쟁을 할 때 무역관계에서의 타격 등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적인 분위기는 한국을 개도국 지위로 남겨두지 않을 시기를 재촉하고 있다. 정부나 국민 모두가 선진 정부와 시민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