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토박이(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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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을 사수하자. 어떻게 올라온 서울길이었던가. 어떻게 버텨온 서울의 6년이던가. 그리고 어떻게 얻게 된 이 자랑스런 도시의 시민이 된 영광이던가. 그것을 다시 잃게 되어서는 안된다. 친척과 친지가 없음으로 해서 내가 이 자랑스런 도시의 시민이 되고자 겪어야했던 수많은 고초들을 자손만대 나의 후손들과 이웃들에게는 다시 겪게 하지 말아야 한다.」
소설가 이청준이 60년대 중반의 데뷔무렵을 회상하면서 쓴 글이다. 소설가가 된 것도 서울을 「사수」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는 것이다. 비단 이청준에게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취업을 위해,혹은 학업을 위해 꾸역꾸역 서울로 몰려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서울로부터 쫓겨나지 않는 것은 절대절명의 과제였다. 서울의 인구는 자연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밖에 없었고,그래서 그 무렵 장안의 화제를 뿌린 이철호의 소설 제목도 『서울은 만원이다』였다. 1934년 조선 태조 이성계가 민심을 수습한다는 명분으로 지금의 서울을 수도로 정한뒤 대충 수도로서의 면모를 갖춘 15세기말께 서울의 인구는 고작 10만명 안팎이었다. 그러나 서울이 정치·경제·교육·문화 등 모든 분야의 중심을 이루면서 마치 공룡처럼 변해갔다. 『자식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망아지를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라』는 속담처럼 서울에서 살지 못하면 행세할 수 없다는 인식이 모든 국민의 의식속에서 뿌리깊이 박혀있는 탓이다.
그렇게 보면 「대대로 그 땅에 태어나서 붙박이로 사는 사람」을 뜻하는 「토박이」가 서울에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의문이다. 50년대의 서울인구가 1백만명 정도였던데 비해 그 10배인 1천만명을 돌파한지도 벌써 여러해 전의 일이니 진짜 「서울토박이」를 찾아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는지도 모른다. 토박이는 대대로 살아온 자기 고장에 대해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마련이지만 설혹 서울에 진짜 토박이가 있다 하더라도 어딜 가나 만원이고 교통난과 공해 등으로 찌들대로 찌든 서울에 대해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수 있겠는가 하는 것도 생각해볼만 하다. 서울시가 정도 6백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벌이고 있는 「서울토박이 찾기」 행사도 그들에게나마 자랑스럽고 영광된 서울시민의 긍지를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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