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빈민가 장기매매 성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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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가난이 질병처럼 번져있는 印度에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臟器를사고파는 풍조가 만연해 사회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장기를 상품처럼 내다 팔려는 사람이 하도 많다보니 수요가 많은 腎臟의 경우 「腎臟 願賣者」들이 전문적으로 모여 시장을 형성한 「腎臟村」까지 형성돼 있는 실정이다.
인도 전통의 계급제도(카스트)에서 하위계급인 바이샤에 속하는가네시아(30)는 인도 남부 마드라스市 교외 슬럼가에서 태어났지만 이름만은 힌두敎경전에 나오는 「富와 번영의 神」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풍요한 미래」를 기원하는 뜻에서 부모가 이런 이름을 지어준것이다. 그러나 가네시아의 인생은 풍요와는 거리가 먼 半生이었다.12세때 학교를 그만둔 가네시아는 건설현장에서 막일꾼으로 벌이를 시작했다.
16세때 부친이 病死한뒤부터는 모친과 형.누이동생등 세사람의부양은 오롯이 가네시아 차지가 되고 말았다.
그나마 노동력이 있던 형이 생활을 비관한 나머지 술독에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네시아가 24세가 됐을 때 18세된 여동생에게 혼담이 들어왔다. 상대는 역시 같은 계급출신으로 서로 엇비슷하게 맞을 것같은 젊은이였다.
가네시아의 당시 수입은 한달에 7백루피(약 5만원)정도.먹고사는 것도 벅찰 지경인데 저축해놓은 돈이 있을리 만무했다.여동생을 시집보내려면 최소한 2만루피(약 1백42만원)는 있어야 했다. 친구를 찾아다니고,여기저기 친척들과 상의한 결과 가네시아는 마침내 신장을 팔기로 결심했다.
『콩팥을 파는 것 외에는 달리 돈을 마련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가네시아의 설명이다.
병원측의 중개로 식품회사를 경영하는 유복한 환자와 연결될 수있었다. 84년4월 가네시아의 왼쪽 콩팥은 적출되자마자 옆 침대에 누워있던 환자에게 신속하게 이식됐다.
매매대금으로 가네시아가 받은 금액은 2만5천루피.2개월뒤 가네시아의 여동생은 그 돈으로 시집갈 수 있었다.
인도에서 장기 매매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면역 억제제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80년대 후반부터다.
면역 억제제의 보급으로 혈연관계가 아닌 사이도 장기이식이 이뤄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신장을 파는 일이 가네시아의 경우처럼 「세파에 찌들려」 어쩔수 없이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빈민가를 중심으로 신장을 팔아 「큰 돈」을 벌었다는 말이 번져나가자 집을 새로 짓기위해,혹은 노름빚을 갚기위해 신장을 팔겠다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브로커가 「암약」하는가 하면 아내의 신장을 팔아먹고 도망치는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인도의 최대 英字紙 인디아 투데이는 지난해7월 이런 슬럼가를「腎臟村」이라고 이름짓고 의학발달로 가능해진 인간장기 매매실태를 적나라하게 보도했다.
인디아 투데이紙에 따르면 신장매매는 서부 봄베이에서도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신장을 이식받는 환자는 주로 中東이나유럽.동남아시아로부터 온 부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렇게해서 이뤄지는 신장 매매는 연간 2천건정도.
비단 신장뿐만 아니라 각막.안구.피부에서부터 시체의 뼈에 이르기까지 「팔 수있는 것」은 모두 다 팔고 있는 상황이다.
이 신문의 특집기사로 장기매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자 인도정부는 마침내 지난해말 「장기매매금지법안」을 국회에 상정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아직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금지시켜도 거래가 지하로 스며들 뿐 실효가 없을 것이라는 반대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법률로 장기 매매를 막을 수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지요.적극적으로 경제개발정책을 서둘러 하루빨리 나라가 잘 살수 있게 하는 것이 불행한 장기 매매를 막는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인도 보건부의 의학정책국장레디(50)의 처방전이다.
〈陳世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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