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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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제1부 불타는 바다 탈출(27) 『이쁘면 뭐하냐,남의 각시.
』 『남의 거라도 이쁘면 좋지.꼭 내 거 해야만 맛이라든.』 『말은 좋다.』 『여자란 그런 게 아녀.이쁘면 이쁠수록 좋고,많으면 많은대로 좋고.』 『시끄럽다.』 꼴에 또 무슨 여자는.
진태를 보며 길남이 히죽 웃었다.진태는 고개를 돌려 야채를 사던 여자를 돌아보았다.집으로 돌아갔는지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너 말이다.아까 보니까 꽤 사납더라.너 그렇게 성깔 있는 줄은 몰랐다.』 『왜? 뜨물에 뭐 담근 놈 같은 줄 알았니?』 『그렇지야 않지만,제법 주먹이나 쓰는 사람 행세를 하니 우습더라.저 일본 장사치가 그냥 설설 기지 않더냐.』 『제 잘못이 있으니 그렇지.』 앞서 가던 명국이 둘을 흘낏 돌아보았다.
『그런데,일본말은 어디서 그렇게 배웠냐? 여간 잘 하는 거 같지 않더라.너 오늘 나를 아주 여러 번 놀래켰어.』 『잘 하긴.주워들은 토막말이다.』 『아니야,보통 일본말이 아니던 걸.
너 어디서 왜놈 앞잡이 하다 온 거 아닌가 모르겠어.혹시 이거따라다닌 건 아니겠지?』 진태가 손가락으로 총쏘는 흉내를 냈다. 『이게 사람을 어떻게 보고.주둥이 함부로 놀리지마.말이 뭐된다는 거 몰라서 그래.』 길남은 걸음을 빨리 해 앞서 내려가고 있는 명국을 따라갔다.곁에 와 서는 길남을 보며 명국이 이를 갈듯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이 놈 새끼.못 된 음식이 뜨겁기만 하다더니.』 길남이 걸음을 멈추었다.명국이 그를 돌아보며 조금 목소리를 높였다.
『너 이렇게 경거망동 할래?』 『네?』 『지금 너,때가 어느땐 줄 알아.나 죽었소 하고 납작 엎드려 있어도 뭣한 마당인데,중뿔나게 남의 일에는 왜 나서는 거야.』 『나서기는요.』 『이 자식이 말대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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