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다 문제있다”/노정객들의 고언/이 대표 초청모임서 신랄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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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현안 한번에 어떻게 해결되나/야 내분… 청와대 독주 어찌 막나
이기택 민주당 대표는 19일 낮 이민우·유치송·고흥문·김원만·신도환·김응주·김판술씨 등 정계 원로들을 롯데호텔로 초청,신년인사겸 오찬을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노정객들은 현 정치권에 대해 고언을 아끼지 않아 이 대표와 배석했던 허경만 국회부의장·김덕규 사무총장 등 현역 정치인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원로들은 먼저 현정부의 실정을 지적한뒤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허약한 야당」의 문제점을 동시에 짚어나갔다.
고흥문 전 국회부의장은 최근 물사태와 관련,『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에선 최우선 해결하겠다고 하나 예산도 없고 관료사회 부패도 여전해 전체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국정보고하는 걸 보니 장관 얘기와 대통령 얘기가 전혀 다른 것 같다』고 정책의 조급·혼란을 지적했다.
고 전 부의장은 『개혁을 한다고 쉽게 얘기하지만 전체를 한꺼번에 할 수는 없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나가야 한다』고 현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개혁의 허점을 꼬집기도 했다. 고 전 부의장은 아울러 『여당도 인기가 없지만 야당도 인기가 없다』고 마주앉은 이 대표에게 화살을 돌렸다.
그는 『야당내에 파벌이 심해 국민들이 아예 비판하지도 않을 정도다. 그동안 김영삼대통령을 지지하던 사람들증 요즘 상당수가 김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그들이 야당 지지도 돌아서지도 않는다』고 말한뒤 『무엇보다 야당이 단결하라』고 촉구했다.
신도환 구 신민당 최고위원은 『물가가 30∼40% 올라도 정부내 누가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 장관이 바뀌자 현실화를 명분으로 다 올라갔다』고 성토한뒤 『이는 야당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신씨는 『청와대의 독주는 야당만이 막을 수 있다. 그러려면 야당이 강해야 한다. 대표가 당내에서 이해·설득시키고 단합·노력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이 대표의 방북 추진과 관련,『대표가 방북하려면 당내에서 한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당내 잡음이 밖으로 새어 나와서는 안되고 대표가 사전에 설득,이해시켰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김원만 구 신민당 부총재는 『강력한 야당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책으로 대결하고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정책정당으로 자리잡을 것을 주문했다.
이 대표 방북에 대해 그는 『원칙적으로 찬성하나 시기가 이르다고 생각한다』고 신중한 접근을 요구한뒤 『지금까지 북한에 간 사람들이 아부나 하고 돌아왔는데 만일 가게 된다면 정정당당히 임하라』고 요구했다.
유치송 전 민한당 총재는 『김일성을 모두가 만나는 것이 필요한 것이냐』고 의문을 표시하곤 『방북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단합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이날 『야당에서도 요즘 거의 매주 정책토론회를 여는 등 풍토가 많이 바뀌었다. 정책정당과 현장정치를 위해 열심히 뛰겠다』고 선배들의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방북은 정부가 허락하면 착실히 준비하고 공식 논의를 거치겠다』고 답했다.<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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