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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인가 정치집단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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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범여권 통합신당 소식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신당에 참여한 시민단체 인사들은 많은 지분을 요구했고, 현역 정치인들은 수세에 몰려 있는 것처럼 머리를 낮추고 있다고 한다. 왜 시민단체는 현실 정치의 지분을 그렇게 목말라 하는가.

  국민이 위임한 국가의 권력이 비대해져 민중의 삶을 지나치게 구속하기 시작하자 시민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시민 활동이 시작됐다. 어느 시대에서든지 그 시대의 과제가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지식인과 시민들의 행동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상소운동 역시 시민운동이라 할 수 있다. 독재시대에는 민주화 운동이 시민운동이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1987년 군사독재가 무너진 뒤 시민들이 다양성을 가지고 대안을 제시하기 시작한 것을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시발점이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의 시민단체는 양극화가 심하다. 참으로 순수한 시민들의 모임이 많지만, 순수한 목적에서 시작했음에도 권좌에 진입하는 통로로 변질된 극소수 권력단체도 있고, 리더 한두 명을 출세시킨 뒤 정체성이 도전받아 피폐해져 버린 단체들도 있다. 여야를 떠나 국가의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역사적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시민단체는 왜 범여권에 포함되려 하는가. 정당의 50% 현실 지분을 요구하는 권력단체가 어찌 시민단체라는 이름을 내걸 수 있는지 안타깝다. 정권이 바뀌면 시민단체는 범야권이 될 것인가, 아니면 또다시 범여권이 될 것인지 궁금하다. 반면 출세한 아들을 멀리서 바라보는 시골 어머니처럼 권좌에 오르내리는 럭셔리 시민단체를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가난하고 순수한 시민단체들은 오늘도 운영비 몇십 만원에 가슴이 졸아 들고 있다.

  언론은 이같이 수많은 시민단체들을 왜 진보, 민주, 운동권이라는 하나의 틀로서 평가해 버리는가. 행복·성장·품격 등의 보편적 가치가 시민단체의 구호가 될 수 있을 텐데, 그간의 우리 사회 발전 양상과 선명성 경쟁으로 인해 내용을 차치하고 시민단체가 민주·개혁이라는 구호만 내세우면 목에 힘이 들어가고 언론은 진보라는 어휘에 주눅이 들어 버렸다.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 시민단체들은 많은 역할과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하지만 현실정치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았던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시민단체들은 사고의 경직성으로 인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공정한 감시자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 뒤 몰아칠 국민의 매서운 회초리를 시민단체들이 얼마만큼의 시간과 노력으로 벗어날 수 있을지 냉철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 시민단체가 너무 많다는 말도 있지만, 선진국인 미국에는 1만2000여 개의 시민단체가 있다. 지역을 발전시키려는 지역재단·봉사재단 등 세상을 밝게 하려는 수많은 단체다. 인간의 최고 욕구는 봉사할 수 있는 삶이라고 하듯이 자기가 속한 사회를 발전시키려는 수많은 시민단체가 있고, 시민들이 아낌없이 펀드 모금·좋은 아이디어 제공에 나서는 사회가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유용상 광주 전남 행복발전소 고문 미래아동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