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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경제] Q . 날씨 마케팅이 뭔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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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휴가철을 맞아 수영복 같은 여름상품을 매장에 잔뜩 쌓아 놓았던 유통업체들은 제대로 팔아 보지도 못하고 서둘러 할인행사에 들어갔습니다. 여름이 최대 성수기인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 등 식음료업체들도 지난해보다 30% 가까이 덜 팔려 울상입니다. 사실 지난해 말이나 올 초만 해도 올여름은 '사상 최대의 무더위가 될 것'이라고 예보했기 때문에 이들 업체의 실망은 더 커졌습니다. 기상 예측을 믿고 여름상품을 예년보다 더 많이 준비했다가 낭패를 보게 된 것이지요.

반면에 잦은 비 때문에 사람들이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으면서 TV 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몰 등은 재미를 보고 있습니다. 식품과 생활용품 중심으로 올여름 매출이 지난해보다 10%가량 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날씨에 따라 장사가 오락가락하는 등의 경제효과가 나타나면서 '날씨 마케팅'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날씨 마케팅은 날씨를 사업에 이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후가 어떻게 될지 장.단기 예측을 한 뒤 이에 맞게 사업 전략을 짜는 것을 말합니다.

가령 내년 여름 날씨가 더울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면 전자업계에서는 에어컨 생산 라인을 확대합니다. 봄철의 불청객 황사가 심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 유통업체들은 '황사 마케팅'을 준비합니다. 황사 마스크.모자.선글라스.항균비누 등을 황사 대비 상품으로 파는 것이지요. 가전업체들은 황사로 탁해진 실내 공기를 맑게 하는 공기청정기 생산.판매에 힘을 쏟게 됩니다. 겨울 추위가 심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면 당연히 난방용품이나 두꺼운 옷을 많이 준비하겠지요.

사실 이 정도의 날씨와 상품 관련성은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얼핏 봐서 별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상품이 날씨 때문에 영향을 받습니다. 미국에선 날씨가 더워지면 패스트푸드가 잘 팔린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뜨거운 가스불 앞에서 일하기 싫은 주부들이 직접 조리하는 대신 가까운 패스트푸드점을 찾았다는 것이지요. 1994년 미국에 혹한이 몰아쳤을 때는 고양이용 깔판이 불티나듯 팔렸다고 합니다. 날씨가 추워 현관 입구나 계단에 물기가 얼어붙는 바람에 미끄럼 방지를 위해 고양이 깔판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애완 고양이 숫자와는 전혀 관계없이 날씨만으로 판매량이 바뀐 것이지요.

이렇게 날씨 때문에 영향을 많이 받는 업계와 업체들은 기상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겠지요. 실제로 패션업체나 식품업체들은 장기 기상 추이에 따라 한 해의 생산.판매 계획을 짭니다. 기온.강수량.일조시간 등을 감안해 제품 기획 단계에서부터 출시 시기와 물량을 조절합니다.

날씨를 이용한 마케팅은 점점 체계적이고 치밀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GS25나 훼미리마트 같은 편의점 업체들입니다. 지난 몇 년간 어떤 날씨에 어떤 물건이 얼마나 팔렸는지에 대한 자료를 수집.분석한 뒤 각 지점에 통보합니다. 온도가 1도 오를 때 아이스크림이 몇 개 더 팔렸다는 식으로 구체적입니다. 이런 정보가 있으면 다음 날의 일기예보에 따라 판매량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을 테고, 팔리지 않는 상품을 잔뜩 쌓아 놓거나 버리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상 정보를 꼭 집어 제공하는 민간 기상업체들도 최근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서울.경기 지역 오후 한때 비' 식으로 예보하는 기상청의 일반 정보에 만족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별도의 돈을 주더라도 더 세밀한 정보를 구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골프장 같은 곳은 그날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에 따라 매출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OO골프장에 OO일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에 소나기가 올 확률 70%' 식의 정보가 있으면 손님들이 예약을 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요.

조선소 같은 곳도 비가 오면 야외 작업장에서 용접이나 페인트칠을 못하기 때문에 다른 일부터 해야 합니다. 조선소가 있는 지역을 콕 집어 예보해 주는 '족집게 정보'가 있으면 그날의 작업 계획을 짜는 데 큰 도움이 되겠지요. 실제로 2005년부터 '지역산업특화 기상정보'를 이용하고 있는 경남 진해의 STX조선은 날씨에 따라 휴무를 조정하고, 용접.도장 등의 실내외 작업을 관리함으로써 연간 47억원의 원가절감 효과를 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상청은 최근의 기상 환경 악화와 맞물려 기상정보산업 시장 규모가 미국 1조원, 일본 5000억원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도 지난해 이 시장 규모가 192억원 정도로 추산됐는데, 아직은 미국.일본에 비해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날씨 마케팅은 최근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 이변이 늘어남에 따라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날씨가 변덕스러워지면서 과거 기상 패턴에 맞춰 사업이나 장사를 하던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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