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미국 같았으면 국가비상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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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美國人들은 식수가 오염되는 일에 대해선 아무리 사소한 정도의오염일지라도 엄청난 소동을 벌이곤 한다.기자가 보기엔 지나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즈음 美國 수도 워싱턴 일대에 예상보다 많은 겨울비가 내려 포토맥강을 수원으로 하는 저수지의 정수조가 범람,워싱턴 시내 일부와 인근 버지니아州 일대에 공급되는 수돗물이 대장균에 오염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미국방송들은 즉각 이를 긴급뉴스로 보도하고 각 신문들도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언론 보도가 독자적인 취재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포토맥 수원지를 관장하는 워싱턴市 당국이 긴급특별성명을 발표,절대로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지 말고 적어도 끓여서 먹도록 시민들에게 당부할 것을 요청해 언론들이 법석을 떤 것이 다.
당국의 이처럼 신속한 대응은 자발적인 조치라기보다는 식수안전관리법의 엄격한 규정에 따른 것이다.
이 법은 식수공급자는 식수에 시민건강을 해치는 어떠한 사고가발생할 경우 제일 먼저 신문에 통보하고 다음에 라디오.TV 등을 통해 성명을 발표할 뿐아니라 연방보건부와 식수공급 책임당사자인 수돗물 중계당국에도 즉각 통보하도록 규정하 고 있다.
이날 시당국의 발표가 있은 후 워싱턴시내 각 빌딩의 화장실이나 수도꼭지가 있는 곳에는 즉각『이 물은 그대로 마실 수 없습니다』라는 전단이 빠짐없이 부착됐다.
시민들도 신문방송을 듣지 못한 가정을 위해 가까운 이웃들끼리서로 전화로 알려주느라 며칠 동안이나 부산스러운 모습이었다.
기자의 눈에 워싱턴시 일원은 며칠동안 사뭇「공포에 휩싸인 듯한 모습」으로 비칠 정도였다.駐美 韓國대사관의 보사관계자는『워싱턴市 식수소동은 어느 장소에서든 발견되는 대장균이 식수에 오염됐다고 해서 벌인 소동』이라면서 『이 정도는 한 국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만일 미국에서 洛東江식수오염과 같은 사태가 벌어졌다면 무슨 소동이 일어났을 것인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벤젠과 톨루엔이 포토맥강에서 검출됐다면 미국에서는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될 지도 모른다.그것도 언론이나 시민단체가 나서기 전에 당국이 먼저 나서서 소동을 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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