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없는 경제 청사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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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의 11개 경제관련 부처가 합동으로 작성한 새해 경제운용 방향은 경제시책의 실무지침으론 무난한 것이지만 연간 경제계획의 청사진이 갖춰야 할 정책의 초점과 우선순위를 빼놓은 것이 큰 흠이다.
각종 경제시책을 신경제 5개년 계획의 장과 절을 따라 내용까지도 비슷하게 나열한 결과 신경제계획을 일관성있게 추진하겠다는 의도는 돋보인다. 농어촌대책,기업 환경개선,사회간접자본시설 확충,국제화에 부응할 제도개혁,물가안정을 중점시책으로 선정한 것도 수긍이 간다.
그러나 성장·소비·투자·수출·국제수지 등의 대책을 다루는 거시경제운용은 그 내용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
해마다 경제운용계획에서 제시해온 성장·물가·국제수지의 목표설정을 아예 생략해버린 것은 그런대로 헤아릴만 하다. 정부는 이를 통해 민간주도 경제와 정부 「관리」 경제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숫자로 표시되는 지표가 지난날 늘 실적평가의 잣대가 되고 그것이 곧장 책임추궁으로 이어져온게 사실이지만 정부가 그 때문에 이번에 목표치를 빼버렸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설령 성장·투자·수출의 크기가 민간의 손에 달려있고 정부가 좌지우지할 방법이 없다 하더라도 거시경제의 항목별 지표는 여전히 중요하다. 국민들은 그 지표를 통해 정부의지의 강도를 가늠하고 정책의 초점을 읽는다. 그리고 기업을 포함한 모든 경제주체들은 각자의 경제활동 계획에 이를 참조한다.
정부의 강력한 정책의지가 가장 아쉬운 대목은 물가안정 대책이다. 연초부터 물가가 불안할뿐 아니라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가격상승 요인이 도처에 쌓여있는 판이면 경제팀의 진퇴를 걸고 소비자 물가를 5% 이내로 억제하겠다는 결의를 밝히는 것이 옳다. 바로 경제운용 방향이 약속하고 있는 「인플레 심리해소」를 위해서도 그것은 꼭 필요한 것이다.
서로 상충되는 정책들을 묶어 제시하는 종합경제정책에서 선택의 고민이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다. 그런 고민이 있었던들 경기회복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물가는 잡고야 말겠다는 의지표명이 가능하지 않았겠는가.
금년도의 통화정책이 금리안정과 물가안정의 어느 쪽을 더 중시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은 정부의 경제운용 방향을 샅샅이 뒤져도 풀리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물가안정을 해치지 않도록 안정적으로 관리한다」고 씌어 있고,또 한쪽에서는 금리를 포함한 생산요소 비용의 안정을 강조한다. 어느쪽이 더 강조되고 있는지는 물론 알 길이 없다.
선택과 우선순위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비로소 전략이 생긴다. 정부는 금년도 경제운용 방향을 집행해가는 과정에서라도 전략적 안목을 가지도록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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