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 대통령 청와대 회동/“경쟁력 강화” 명분으로 악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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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치보복」 악순환 고비넘는 계기/전·노씨 앙금해소 YS역할 주목
김영삼대통령과 최규하·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4자회동은 범여권이 재단합하는 상징적인 만남으로 기록될 것 같다.
우리의 불행했던 헌정사로 인해 생존 전·현직 대통령간의 이같은 모임이 사실상 없었다는 점에서 볼때 이날 만남은 그 역사적 의미가 있으며,특히 새정부 출범후 전·현직 대통령간의 불편했던 관계로 보아도 현실정치의 새 방향을 함축하는 행사가 됐다.
이날 김 대통령은 지난해의 사정작업을 포함한 개혁시책과 앞으로의 개혁정책을 언급하면서 그 불가피성과 그 과정에서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여러 불편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실제 전·현직 대통령은 냉엄한 국제경쟁을 헤쳐나가자면 국민의 모든 계층이 대동단결해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해 의미있는 모임이 됐다는 지적이다.
김 대통령은 이러한 전제위에서 금년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인 만큼 국가 최고원로로서 전직 대통령 세사람의 역할이 아쉽고 긴요함을 강조하고 협조를 주문했다.
사실 국민적 단합이라는 막연한 단어를 사용했으나 여기에 함축되어 있는 뜻은 분열된 여권의 재단합이라는 구체적인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 대통령은 국가발전을 위해 대화합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기조위에서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음을 완곡히 시사했다. 이는 과거비리 척결 차원에서 지난해의 사정작업 때 구속된 전직 고위공직자 등에 대한 구속정지 등의 후속조치가 뒤따를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청와대가 이번 4자회동에 앞서 구속중인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에 대한 석방 등의 타당성을 내밀히 검토했던 것도 대화합을 위한 기틀 마련이라는 노력과 무관치 않은 것이다.
김 대통령의 이같은 언명에 대해 전직 대통령 모두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치 않는 것은 물론 적극적인 협조와 지적을 다짐했다. 이는 국민적 대동단결이라는 김 대통령의 주문이 거부할 수 없는 당위성을 지니는 것과 함께 각자의 현실적 필요성과도 부합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전·노 두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과거사 정리와 관련한 직접적인 「당사자」로서 이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매듭지어져야 활동이 자유로울 수 있는 입장이다.
동시에 그들 재임시의 적지않은 고위 참모들이 구속·도피중인 상황도 짐이 되고 있음을 부인키 어렵다.
이런 현실적인 이해와 함께 전직 대통령들이라는 특별한 위치로 볼때 어떤 방식이든 새정부를 도와야 한다는 인식도 작용했을 것이다.
김 대통령이 이번의 4자회동을 추진하면서 전직 대통령의 반응 등을 점검한 결과 모두가 새정부의 조치에 섭섭함을 표시하기 보다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며 『잘돼야 하고,잘되기를 바란다』는 분명한 의사를 밝힌 것도 이날의 회동이 원만히 이루어지고 전폭적인 지지와 협조를 낳게 한 것과 무관치 않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대통령을 지낸 분들이라 역시 다르다』고 한 것은 사뭇 시사적이다.
이날 세명의 전직 대통령들은 앞으로 종종 이런 자리를 갖고 국정운영에 조언을 아끼지 말아 달라는 김 대통령의 요청도 쾌히 수락했는데 실제의 4자회동이든,전직 대통령 한사람 한사람과의 개별회동이 됐든,또는 막후의 조언형식이 되든 전직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을 자문하고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정치보복의 악순환으로 얼룩진 우리 헌정사를 한단계 올리는 계기가 될 것은 충분히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날을 계기로 과거비리로 구속기소된 인사들에 대한 선처도 앞으로 예상할 수 있는데 김 대통령 자신도 현 정부의 태동이 전­노 전 대통령과는 전혀 단절시켜 생각할 수 없는 부분도 있고 자녀문제로 공직을 벗어나야 했던 최형우의원의 내무장관 기용과 서석재 전 의원이 사면조치라는 부담 등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어서 대화합의 분위기가 성숙되면 실현될듯하다.
따라서 전­노 전 대통령의 사무실 마련이나 외유설 등은 단순한 개인의 스케줄로 보기가 어렵다.
이번의 4자회동이후 국내 정황은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일 것이다.
○…전­노 전 전직 대통령은 10일 회동의 초청자 주체가 김 대통령인 만큼 김 대통령측에서 신·구 화합,새로운 국정과제 등에 관해 얘기를 풀어나가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대통령이 던지는 화제에 따라 전직 국가원수로서 의견을 말하는 것이지 「전직」으로서 먼저 무언가 문제를 제기하는 과잉행동은 안하리라는게 주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다만 발언의 양으로 보자면 노·최 전 대통령에 비해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전 전 대통령은 좀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전 전 대통령은 개혁·경제활성화 등 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포괄적인 지지를 밝히고 북한 핵개발과 관련된 국가안보,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에 따른 대처문제 등을 언급할 것으로 보인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24일 오후 이회창총리가 신임인사차 연희동 자택에 들렀을 때 『이제는 나라가 안정된 가운데 국력이 신장되고 있다』고 하면서도 『북한 핵문제를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처리해야할 것으로 본다』는 뜻을 덧붙인바 있다.
노 전 대통령도 이 총리에게 『어느 시대이건 어려움은 예외없이 닥친다』며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고 말해 개혁에 대한 동감을 표출했다.
김 대통령이 국력대결집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전­노 불화에 대해 우회적으로 접근할지 여부도 주목되고 있다.<김현일·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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