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옭아맨 규정(뒷다리 잡는 「규제」 이젠그만: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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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수출 급한데 검사서 두달 “스톱”/70년대 잣대로 간섭… 납기차질/법인 전환하는데 10개월 소요/“공장증설 허용” 말뿐… 일선 요지부동
충남 금산에 위치한 의료기 제조업체 D사의 1천평 공장중 2백∼3백평에는 항상 두달치 물량이 재고로 쌓여 있다. 넓지않은 공장에 이만한 양의 재고를 쌓아놓는데는 속사정이 있다. 바로 의료기에 대해 정부가 정해 놓고 있는 품질검사제도 때문이다.
현행 보사부 약사법 고시에는 14개 품목의 의료기기는 사전 검사를 받아야만 판매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의료기가 국민생명과 관련된 것인 만큼 검사가 철저해야 한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지만 문제는 이 검사제도를 운용하는 측의 경직성이다.
생산하는 물건은 판매되기 전에 모두 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만들어 놓으면 즉시 검사를 해주는 것도 아니다.
제품을 생산하는데 보통 10여일이 걸리지만 검사받기 위해 대기하는 기간이 1∼2개월이나 걸린다.
이 때문에 공장장 고모씨는 『미리 충분한 재고를 확보해 놓지 않으면 자칫 납기를 지키지 못해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한다.
의료기의 사전 전수검사제도는 국산 의료기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지 못했던 70년대말 품질향상과 안정성 확보를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까다로운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까지 받고 연간 4백만달러씩 수출하는 이 회사는 아직도 이런 식의 검사가 남아있는 이유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면도기생산업체인 도루코사는 지난해 경기도 용인공장에 부과된 1억여원의 공한지세에 할말을 잃었다. 이 공장은 부지가 1만3천6백평인데도 절반정도에만 생산 설비가 들어차 있고 나머지 절반은 비어있다. 세법상 당연히 부과대상이다.
87년 서울 영등포공장이 공장이전 촉진지역으로 지정돼 용인으로 생산설비를 옮겼던 이 회사는 그동안 수출이 늘어 공장 증설을 추진했지만 관할 용인군은 『이곳이 자연녹지인데다 비도시형 업종』이라는 이유로 공장 증설을 불허했다.
지난해 정부는 기업규제 완화특별조치법으로 수도권내 자연보전권역도 3천평방m까지 1회에 한해 증설을 허용한다고 했지만 이나마도 일선 행정관서에서는 아직 통용이 안된다.
지난해말 법인 등록을 마친 중소기계업체 S사 김모사장(59)은 개인업체에서 법인으로 전환하기가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다고 한숨을 내쉰다.
현재 개인기업이 현물출자 방식을 통해 법인으로 전환하는데는 사법서사 선임부터 출발해 법인등록을 거쳐 개인기업 결산과 폐업신고를 마칠 때까지 무려 10여가지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 상대해야 할 곳만 해도 등기소·공증사무소·공인회계법인·해당 지방관청 등 다섯군데가 넘는다.
게다가 조금만 서류 기재가 잘못돼도 통째로 반려되는 바람에 김 사장은 10개월을 소비해야 했다.
『기업을 새로 세우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법인으로 전환하는데 이렇게 까다로운줄 미리 알았으면 차라리 개인업체로 그냥 남아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김 사장의 솔직한 고백이다.
『웬만한 중소기업 사장들은 다 한번씩 전과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잡한 정부 규제를 곧이 곧대로 따랐다가는 당장 기업운영이 곤란하니 할 수 없이 편법을 썼다는 이야기죠.』
한국플래스틱조합의 이국노이사장의 말처럼 기업들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오히려 고의적인 탈법과 불법을 부추기는데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해안매립지 공장은 조경시설을 해야한다,수도권에선 의류공장의 증설이 안된다,공단내 생산시설은 마음대로 임대할 수 없다,기준공장 면적률을 꼭 기켜라 등 중소기업인들이 지켜야 하고,그래서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까탈스러운 규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박상규회장은 『어떤 일에 존치이유가 불투명한 열가지 규제가 있다고 할 때 이중 세가지를 풀어 생색을 내도 나머지 일곱가지가 그대로 있으면 일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선 결국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박승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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