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논술에 울어버린 수험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6일 오전10시40분 延世大 문과대학 고사장.
1교시 국어시험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허옇게 빈 칸이남아있는 답안지를 내는 金모양(19.부산D여고)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金양은 특히 논술시험의 시간이 몹시 모자라 적절한 어휘로 체계적인 논리전개를 생각할 겨 를도 없이 칸 채우기에도 바빴다며눈물을 글썽였다.
「흑백논리.양비론.양시론과 다른, 더 나은 사고방식의 대안에관해 논하라.」 긴 지문을 주고 이같이 제시된 요지를 찾아내 쓰도록 한 논술2번 문제에 대해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특히 진땀을 흘린듯 했다.
14년만에 부활된 본고사에서 첫선을 보인 논술시험은 그동안 주입식 암기교육에 익숙한 학생들에게는 차라리 가혹행위라는 느낌이었다.「폭넓은 독서와 사고력을 요구한다」는 학교측의 주장은 나름대로 설득력있게 들렸으나 높은 修能점수를 받아 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수험생으로서 단시일내에 감당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였다.
일부 수험생들은 예상문제 답안지를 유형별로 3~4개 만들어 모두 암기,논술시험조차 암기식 방법으로 대비했다 낭패한 표정을보이기도 했다.
『우선 문제 자체의 이해조차 힘든데다 암기해 간 유형에 맞춰서술하려고 하니 앞뒤가 뒤죽박죽돼 도무지 갈피조차 잡을 수 없었어요.』 시험시작 10분전까지 고사장 구석에서 미리 준비한 논술 답안유형을 열심히 외웠던 金양은 끝내 화장실로 달려가 훌쩍였다. 이같은 경우는 金양 한명뿐이 아니었다.시험장에 있는 쓰레기통에는 학생들이 나름대로 준비해온 논술답안 유형을 적은 종이조각이 구겨진채 수북이 쌓여있었다.
수십년 동안 암기 잘하는 것이 공부 잘하는 것으로 여겨져왔던우리의 교육.이제 더이상 그같은 교육이 설 자리는 없어진 것을실감할 수 있었다.
〈朴晟惠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