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오닐의 고집이 남긴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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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토머스 오닐 前하원의장이 5일 사망한 다음날 워싱턴 포스트紙는 오닐前의장의 선거구였던 매사추세츠州 보스턴 글로브紙 기사를인용해 오닐의 정치적 성공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오닐은 사망할 때까지 한 아내를 반려로 삼았고 같은 친구들을 사귀었으며,그리고 같은 생활방식을 지켰다.그는 또 지난 60년동안 같은 가치관과 같은 철학을 지녔다.』 오닐은 76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시절 하원의장에 선출된 이후 지미 카터 대통령 시대를 거쳐 로널드 레이건대통령의 집권 시기인 86년 은퇴때까지 10년간 하원의장으로 있으면서「하원의 군주」「의회독재자」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강력한 의회내 리더십을 발휘한 인물이다. 그는 한때 민주당대통령후보가 될 것이라는 언론의 추측성추대를 받기도 했으며 민주당대통령후보를 만들어내는 「킹메이커」라는 말도 들었다.
그는 36년 24세의 젊은 나이로 정치를 시작한 이래 매사추세츠州 하원의 첫 민주당소속 의장을 거쳐 52년 존 F 케네디前대통령이 상원으로 옮기면서 그 자리를 이어받아 계속 매사추세츠州를 근거로 연방 하원의원직을 지켰다.그는 연방 하원에서 은퇴때까지 상원으로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오닐은 이같은 정치경력과 굳건한 의회내 리더십으로 인해 상대당인 공화당으로부터 고집불통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고집은 오닐의 정치적 성공의 원천이기도 했다.
그는 여느 미국정치인들처럼 자신의 취향에 맞추어 아내를 바꾸지도 않았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바꾸지도 않았다.또 개인적.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져 자신의 가치관.철학을 바꾸지도 않았다. 미국 정치지도자들의 도덕성과 일관성은 미국 유권자의 중요한 판단.선택의 기준이 되고 있다.
도덕성과 일관성은 고집없이는 지켜질 수 없는 것이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소리도 없이 무명인사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미국 정계에서 오닐이 끝까지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 정계는 물론 국민의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같은 「올바른 신념에 대한 고집」을 지킬수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현대사에도 신념의 정치인들이 적지않다.그러나 그들이오닐만큼 영향력을 행사하고 존경을 받았던 것같지는 않다.정치개혁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지금 그들을 새롭게 조명하는 작업이 필요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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