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칼럼>규제완화,일선창구가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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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70년 칠레 대통령선거에서 살바도르 아옌데는 사회주의와 美기업 國有化를 공약으로 내걸고 승리했다.약속대로 그는 야당이 다수당인 의회의 만장일치 지지까지 받으며 美 구리 재벌 아나콘다케네코트社에 대한 국유화 조치를 단행했다.지난 60년동안 챙긴이윤으로 이 회사는 이미 충분히 투자보상을 받았다는게 아옌데의주장이었다.실제로 45년부터 그 당시까지 칠레 진출 美기업들의본국에 대한 果實송금은 72억달러였으나 현지 경제에 대한 재투자는 10억달러에 불과했다는 통계가 나와 있었다.
美國은 칠레에 대해 官.民합동의 경제보복에 돌입했다.당시 국무장관 윌리엄 로저스는 유관기업인들에게『美행정부는 비즈니스 행정부』라고 천명하고『美기업을 보호하는 것이 행정부의 임무』라고선언했다.
IMF(국제통화기금)등 국제금융기구에 압력을 가해 칠레에 대한 차관을 중지시키고 이 나라 수출主宗品 구리에 대해 범세계적인 禁輸조치를 유도하는 한편 아옌데 反對정파.언론.노조를 공공연히 지원하고 나섰다.美기업등은 칠레에 대해 각종 부품판매를 거부하고 채 국유화조치를 당하지 않은 현지업체들의 조업을 중지함으로써 失業을 악화시켰다.
군부쿠데타는 必至의 과정이었다.아옌데의 被殺도 비극이었지만 反아옌데세력에 의한 폭력.파업등으로 칠레사회와 경제는 붕괴상태에 빠졌다.아옌데를 제거한 군사정권은 잔인했다.이들의 손에 2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그러나 이 정권은 美기업에 우호적이었다.IMF차관과 美기업 투자등이 재개됐다.
20년도 더 된 칠레 사회주의 실험의 비극을 회상한 것은 지금도 흔들리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美대외정책과 기업이익의 結着관계를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美國같은 고도의 자본주의는 해외투자,多국적기업등의 확장형태로「국제화」가 이뤄지게 돼있고 美행정부로서도 국가경제차원에서 이들의 해외 이익보호 외에 다른 代案이 없는 것이다.아옌데를 살육한 칠레 군사정권과의 蜜月에서 보듯 美國 대외 정책은 결코「인권伸張」이나「민주善隣」만을 위해서가 아니다.세계경제 속에서 美기업의 이익을 최대한 보호함으로써 美경제를 강화하자는 것이 美대외정책의 基底이며 要諦인 것이다.
이 말은 비단 美國만을 찍어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니다.정도와事案은 다를 수 있지만 자본주의를 하는 거의 모든 선진국가는 五十步百步일 뿐이다.이들 국가의 모든 정부는 생산자,특히 기업들의 발전단계에 맞추어 나름대로의 상응활동을 벌 이고 있는 것이다.이름 붙이기에 따라 外交도 되고 通商협상도 되지만 뚜껑을열어보면 전쟁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마치 우루과이 라운드를 계기로 우리 문 앞에 별안간 나타난 것처럼 인식되기도 하는 선진국들에 모두 해당되는 얘기다.
他國의 內政을 흔들어가면서까지 自國기업의 이익확보에 발벗고 나서온 외국의 행태를 지켜볼 때 요새 韓國의 지도자들이 뒤늦게일제히 일어서서 기업에 대한「규제」완화에 목청을 돋우는 모습은씁쓸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칠레에서와 같은 流血참사가 없어 다행이었는지 모르지만 美國은自國의 극소수 쌀농가 이익보호를 위해 지난 연말 제네바에서 끝내 韓國정부 대표를 굴복시켜 쌀시장 개방을 받아갔다.이와 관련해 靑瓦臺 일각에서까지 日本보다 유리한 개방 유 예기간 확보를美측으로부터 배려받았다며 훌륭한 협상결과라고 自評한 것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경쟁자에 대해 개념파악조차 안돼 있는 느낌이다.규제완화는 대통령도 천명하고 총리도 강조하고,심지어 대통령비서실장까지도 나서서 점검반이라는 정부기구 간판을 내걸고 있는 사진이 신문.TV에 보도되고 있다.
백성들은 대통령이나 총리나 청와대비서실장을 직접적으로 알지 못한다.신문.TV를 통해 이들이 천명하고 강조하는 것을 듣고 있을 뿐이다.백성들이 경험하는 정부는 一線관서일 뿐이다.
10년간의 美國 이민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해 소규모 광산업을 시작하려는 金아무개는 최근 군청 민원창구에서 목이 쉬도록 고함지르며 흥분한 일이 있었다.
그날도 그는 종전처럼 郡서기 지시에 따라 미비서류를 보완해 군청에 들어갔다.그러나 이번엔 환경청 서류를 떼어오라는 직원의퉁명스런 지시가 기다리고 있었다.분을 삭이며 그는 지방 환경청사무실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직원은 그런 것까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114에 물어보라고 대꾸했다.더이상 흥분을 참지 못해 고함.욕설을 퍼붓고 뛰쳐나온 그가 환경청사무실이 군청에서 指呼之間에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땐 歸國을 후회하며 눈물까지 흘렸다.필자 친구의 얘기다.
***「자다가 봉창…」은 곤란 高位로 갈수록 국정 책임자들의정책제시는 책임과 위험부담이 정비례로 커진다.일선 집행부서와 담당 실무선의 이행 여부에 대한 철저한 확인이 따르지 않는 경우 金아무개의 경험에서처럼『자다가 봉창두드리는 소리』나 반복하는 지도자들이 되 기 때문이다.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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