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국제화 앞서 해야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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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제2의 開國」이라고 부르는 국제화.개방화는 우루과이라운드(UR)로 대표되는 국제간 협력체제에 참여하는 한,피할 수도 더이상 미룰 수도 없고 代案을 고려할 수도 없는 거의 무조건적인必然이었다.그러나 그 본래의 뜻과 지향이 순수함에 도 불구하고시기선택과 그 추진의 모양 때문에 본의가 훼손돼버린 측면이 없지 않다.
輸出立國을 외치면서 섬유제품.전자제품에서 자동차에 이르는 공산품을 수출해 온 지가 언제인데 이제와서 國際化 아니면 다른 선택이 없다는 것은 새삼스럽다는 違和感을 씻을 수가 없다.타이밍으로 보아 UR의 多者間협상 국면을 넘기기 위한 방편이었다는평가를 면하기 어렵도록 되어 버린 것이다.더구나 연말에 단행된공공요금의 일률적인 인상이 국제화.개방화의 연장선상에서 취해진것 같은 결과가 된 것도 정책의 우선순위 책정에서 저지른 돌이킬 수 없는 失策이 아닐 수 없 다.자칫 국제화가 高物價.인플레이션과 等式을 이루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어버렸다.국제화의 전략을 짜고 앞장 서서 이끌어 가야 할 관료의 발상이 이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는 현실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불행히도 韓國의 역사에는 외국을 상대로 영악한 장사를 통한 경쟁이나 共存을 해본 경험이 없다.實學이라는 소수파가 장사의 원리와 세계와 더불어 살 것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다만 책을 통해서였을 뿐이다.美國의 門戶開放정책과 그에 대응하 는 中國의 以夷制夷전략의 여파로 이룩된 한국의 開國은 불평등의 표본이 돼버렸다.이러한 역사상의 전략부재.준비부족등의 전철이 오늘의 국제화.개방화에서 다시 되풀이될 위험성을 제기하는 것은 비록 불길할 망정 배제할 것은 못된다.
그러한 위험성을 살피는 작업은 전적으로 국제화정책의 직접 轉機가 된 관세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체제의 理念을 재점검하고 엔.마르크.달러로 대표되는 블록체제의 장래 모습이 어떤 것일까를 巨視的인 역사안목으로 예측하는 능력 에 달려 있다. 조직의 생리와 속성이 기승을 떠는 관료조직이나 이해집단의利害의 절충을 초월하는 대국적인 판단과 결정이 중요하다.이제 국제화.개방화는 어느 특정한 행정부처를 초월한 범정부적인 작업이 됐다.그것이 과연 부분적인 기구 개편으로 이룩될 수 있다고보기는 어렵다.
국제화는 더욱 철저한 個性과 傳統의 확립을 요구한다.국제적으로 聲價를 얻은 창작물들이 하나같이 독특한 개성을 가진 것들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특징도 전통도 없는 두루뭉수리로 괜찮게만 만드는 것으로는 국제사회에서 통할 수가 없다.더욱 돋보이는 개성과 창조적인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보다 옳바르고 폭넓은 이해를 가져야 할 것은 물론 심지어는 國語에 대한보다 철저한 교육을 필요로 한다.
우리 역사에 대한 긍지와 애착을 기르되 소아병적인 애국심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평범한 민주시민의 지혜를 가르치는 역사교육,한글의 우수성에 못지 않게 국어의 올바른 구사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국어교육을 강화하는 일등은 다같이 국제 화.개방화를위한 사소하지만 중요한 절차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국제화.개방화에는 본받을만한 모델이 없다는 사실이다.가장 국제적인 것은 가장 개성적인 것,가장 特化된 것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국경이 무너지고 자유무역이 살아있는 환경에서는 국제 적인 것이 어려운 이상으로 特化된 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이다.창작과 모방의 한계가 분명치 않고 우리 것과 남의 것의 특징이 얼른 비교될 수 없는 混沌의 세계가 한국의 국제화.개방화를 지켜보고 있다.더구나『우리도 잘만 하면 곧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자만과 虛勢가 한국인을 들뜨게 만들더니 최근에 와서는 정반대의 自虐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눈에 띄고 있다.다같이 정치적인필요로 조작한 이런 데마고기를 극복하는 것부터가 국제화와 개방화로 나서는 첫 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歐美化 모델서 탈피를 중진국.선진국을 구분하는 近代化 이론은 근대화를 歐美化,즉 앵글로-미국화로 보는 지극히 도식적인 미국식 이론임을 무시한채 선진국을 인류발전의 최종 목표처럼과장하는 것이야말로 현대판 愚民政治가 아닐 수 없다.
근대화 요건인 경제면의 産業化,정치면의 민주화,사회면의 정당한 분배 실현,그리고 직업적인 관료제도의 확립 등에서 한국은 아직도 도달해야 할 목표치가 멀기만 하기 때문이다.
〈言論人〉 ◇筆者약력▲63세▲東國大.美컬럼비아大 수학▲서울신문.경향신문 편집국장▲언론연구원장▲聯合通信사장▲저서『중국의 정치와 문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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