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내각」분위기 잡아간다(변화 몰고오는 「이총리 바람」: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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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각의 난상토론… 준비없인 못배겨/소신파 많아 인기 치우칠 우려도
새 내각에서 변화의 조짐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다.
이회창내각이 출범한지 2주일 남짓한 시점에서 아직 변화의 모습을 확연히 그려볼 수는 없으나 종전과는 다른 모습들이 여러곳에서 눈에 띄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를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곳은 국무회의장.
지난해 12월29일 국무회의에 주세법 시행령 개정안이 상정됐다.
주류의 종류를 다양화하기 위해 소주에 조미료·설탕·포도당 등 각종 첨가물을 넣을 수 있도록 시행령을 고치자는 의안이었다.
그러나 홍재형 재무장관의 제안설명이 끝나자 일부 국무위원들이 이의를 제기했고,특히 YWCA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김숙희 교육부장관은 조미료의 신체유해론까지 거론하며 사용에 엄격한 제한을 둘 것을 제안하는 등 국무위원들의 의견이 활발하게 개진됐다.
과거에는 타부처 소관사항에는 될수록 입을 떼지 않으려 했던게 국무위원들의 자세였다. 6공 말기 약사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별다른 확인이나 토론과정없이 통과했다가 한­약 분쟁이라는 미증유의 사회문제를 야기했고,지난해 슬롯머신업소 폐지여부를 다룬 국무회의가 어정쩡한 결론으로 한때 혼돈을 일으켰다.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이 되는 얘기든 안되는 얘기든 활발한 토론을 벌이는 것은 그만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어 바람직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해 12월23일의 첫 국무회의에서 오인환 공보처장관은 『교통체증으로 과천청사에서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장관들이 시간을 많이 빼앗긴다』며 과천청사와 광화문 청사간의 헬기운행 문제 등을 제기했다. 이 총리와 최형우 내무장관의 반론으로 성사되진 않았지만 오명 교통부장관이 이 토론에서 화상회의 안을 제시,검토과제로 남겨졌다. 국무회의가 국정의 최고 심의기구로 자리잡기 위한 노력의 일단락이라 할 수 있다. 이 총리가 국무회의에 상정할 법안을 전날 공관으로 갖고가 일일이 정독해 내용을 소상히 꿰뚫고 있어 장관들도 준비없이 국무회의에 나가기는 어려운 분위기라는 것이다.
내각의 변화는 일선 각 부처에서 더 실감할 수 있다.
특히 경제기획원을 필두로 통일원·상공자원부 등 대부분의 부처에서 종래의 상의하달이 아닌 진지한 내부토론을 거쳐 정책을 결정하는 모습이 자주 목도되고 있다.
간부회의를 서서 차를 들며 주재한 정재석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의 파격이 여러부처에도 점차 나타나고 있다. 4일 상공자원부에서는 김철수장관 주재로 국제화시대에 대처하기 위한 기구개편 문제를 놓고 간부들간의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통일원도 이날 수유동 통일연수원에서 이영덕부총리 등 간부들과 민족통일문제연구원 교수 등 외부인이 참석한 가운데 오후 10시까지 8시간동안 남북관계 대책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최근 공보처는 과장들의 토론회에서 제기된 연극상연 아이디어를 오 장관이 수용해 개혁을 주제로 한 공무원들의 연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총무처·공보처 등은 과장회의 등이 간부회의처럼 벌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여기서 표출된 하의들이 모아져 부처의 정책이나 행사에 깊숙이 반영되기 시작할지는 더 두고볼 사안이나 긍정적 현상임엔 틀림없다.
최 내무장관은 취임 이튿날부터 전국 시·도의 파출소·터미널·달동네·동사무소 등의 순시에 나선데 이어 5일엔 서해페리호 사건의 위도와 아시아나기 사고지역인 전남 마천마을을 찾았다.
이병태 국방부장관은 군수물자 수입비리로 국민의 여론이 따가워지자 즉시 율곡사업 재감사 지시를 내리는가 하면 김 교육부장관은 신년사에서 「새해를 신한국 교육의 원년」이라고 주장,교육개혁을 추진할 뜻이 있음을 분명히하고 있다.
그러나 이 총리 자신을 포함해 개성파 장관들이 유달리 많은 이회창내각의 문제점도 벌써부터 우려되는 상황이다. 너무 강한 소신의 주장들이 부딪칠 경우 과연 효율적인 의사결정이 적시에 이루어질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그 하나다. 또다른 문제점은 일부 국무위원들이 지나치게 국민의 인기를 의식해 쇼맨십에 더욱 신경쓰는게 아니냐는 지적이다.<신동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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