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달과 1백37대 1 경쟁(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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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새 대입제도의 성패를 묻는 1차 관문인 전기대 입시원서 접수가 끝났다. 결과를 보면 몇몇 명문대에서 미달학과가 생겨나고 중하위권 대학에서는 지나치게 높은 경쟁률을 보이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런 극단적인 현상만을 보고 지레 놀라 새 대입제도에 뭔가 큰 잘못이 있다고 호들갑을 떨 수가 있고,이 제도로는 안된다는 주장이 나올 소지도 있다. 이런 잘못된 시각을 처음부터 바로잡기 위해서도 미달과 과당경쟁이라는 특이현상이 왜 생겨났나를 냉정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낯선 새 제도의 도입에는 입시생의 불안감과 눈치작전이 더 클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새로 도입된 특차시험에서 상당수 고득점자가 낮춰 지원하는 바람에 하향안정지원은 어느해 보다 이번 입시에서 두드러진 요소로 작용했다. 특히 여학생의 경우 하향지원추세가 강해 이화여대의 경우 무려 25개 학과에서 미달이라는 개교이래 최대의 이변을 낳게 되었다. 미달학과가 생겼다고 창피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 새 제도의 운용에 대학당국이 잘못 적응했음을 인정하고 후기시험에서 재시험의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특히 전기대 전형일자를 무려 37개 대학이 서울대 입시일정에 맞춰 1월6일로 정했다는 사실이 이런 이변을 낳는 중요변수였다. 새 제도의 가장 큰 장점은 입시생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복수지원제의 도입이다. 그러나 선택의 기회를 줄인 쪽이 바로 대학이었다. 허수지원으로 늘어날 행정의 공백을 우려하고 세칭 일류대간의 경쟁의식으로 입시 또는 면접일자를 한날 한시로 정함으로써 입시생들의 선택폭을 좁혔다.
그 결과 1월6일에 시험을 치르는 37개 대학 경쟁률은 저조하고 다른 날을 택한 세종대와 동국대 등은 높은 경쟁률을 보이면서 1백37대 1의 경쟁이라는 천문학적인 숫자까지 나온 것이다. 물론 여기엔 14년만에 실시되는 대학 본고사에 대한 기피심리도 크게 작용했다.
결국 미달과 과당경쟁이라는 이변은 제도의 잘못이기 보다는 제도를 교묘히 이용하려는 입시생과 대학 당국이 서로 눈치보며 만들어낸 예기치 않은 결과였다. 이런 이변을 막기 위해 어떤 조처와 보완책이 필요한가. 우선 대학은 자율적으로 입시일자를 소신있게 분산해서 정해야 할 것이다. 서울대가 6일이니 우리도 그날이라는 타율적인 결정이 경쟁률의 분포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그 다음 대학의 자율로 결정할 본고사 실시문제를 모두가 자진반납할게 아니라 대학의 특성과 건학이념에 맞춰 최소한의 실시를 시도할 일이다. 내년에는 22개 국립대학이 본고사 실시를 결정했으니 본고사를 피해가는 이변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제도의 잘잘못에만 있는게 아니다. 악용의 소지를 없애며 개선의 보완을 쉬지 않고 시도하는 노력을 서로가 보일 때 그 제도는 성공적인 정착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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