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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발한 성인재교육(선진교육개혁:35·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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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평생동안 배운다/학교시설 활용… 각분야 강좌개설/미,1학기 수강료 불과 만6천원/한국은 수강료 비싼 사설학원뿐
읽고 쓰기를 문맹의 척도로 삼을 때 한국은 세계 최저의 문맹률을 자랑하는 교육선진국이다. 그러나 문맹의 정의를 조금만 달리하면 한국은 교육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컴퓨터를 다루지 못해 부하 직원들 앞에서 창피당하기 일쑤인 기업 간부들,비싼 경비를 들여 찾아간 외국땅에서 간단한 회화 한마디를 몰라 쩔쩔 매는 한국 관광객들은 스스로를 『까막눈이나 다름없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정규교육을 다 마친 이들에게 까막눈의 고민을 해결해줄 성인교육기관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전문가 좌담 5면>
미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중 하나도 높은 문맹률. 그러나 정작 미국 교육관계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신문을 읽을 능력이 없는 「문자문맹」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급증하고 있는 「신종문맹」이다.
은행 입출금표를 작성하거나,방에 카핏을 까는 비용을 계산하거나,도표에 담긴 정보를 그라프에 옮기는 등의 작업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신종 문맹자다.
최근 미국 교육부가 펴낸 한 보고서는 1억9천1백만 미국 성인의 절반정도가 신종문맹자라고 밝혔다. 최하위 20%권에 든 사람들중 절반이 고교졸업 학력자들이었다. 「정규교육을 마친 이 신종문맹자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다는 미국 성인교육이 안고 있는 절박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올해 로스앤젤레스 통합교육구청의 성인교육 프로그램엔 15만여명이 등록했다. 갓 이민와 이발·열쇠제작·페인트칠 등 단순기술을 배우는 사람들과 보다 좋은 직장으로 옮기기 위해 컴퓨터공학·섬유공학·디자인·회계학 등을 새로 배우고 있는 직장인들이 6백24개 코스에서 재교육을 받고 있다.
대개 3∼4개월 과정인 이들의 한 학기 수강료는 우리 돈으로 책 3권값 정도인 1만6천원. 부족한 재원은 연방정부의 보조금으로 충당된다. 구청 산하 성인교육기관중 한 곳인 「메트러폴리턴 기술센터」만해도 연 예산이 1백만달러를 넘는다. 이 센터 교장인 스펜스 매킨타이어 여사는 『요즘처럼 사회변화 속도가 빨라지면 사양화되는 산업이 늘어나게 마련이고 이에 종사하다 밀려난 실직자들이 새로운 업종에 취업할 수 있도록 재교육시켜주는 공공기관이 필요하다』며 계속 교육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미국의 성인은 평생동안 직업을 평균 4∼5차례 바꾼다. 그러니 정규학교가 새로운 직업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재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1백년 이상 역사를 가진 미국의 성인교육은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미국의 계속교육은 정부만의 몫은 아니다. 저녁에도 불을 환하게 밝힌 미국대학의 강의실은 어김없이 개방대학 프로그램이 열리는 곳이다.
취재팀은 지난달 2일 어스름이 깔리는 저녁 캘리포니아주립대학에서 앨런 크누스씨 부부를 만났다. 크누스씨(68)는 3년전 정년퇴직한 전 캘리포니아주립대학(UCLA) 화공학과 주임교수.
요즘도 왕성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매주 화·목요일 저녁 고급독일어 강좌를 듣고 있다.
『좋은 연구성과를 내놓으려면 연구자간에 의사소통이 원활해야지요. 공동연구 파트너인 독일인 학자와 깊이있는 토론을 벌일 수 있는 정도까진 배워야지요.』 부인 마거릿씨(67)는 동네 독일인 친구와 더 가까워지고 싶어 이 강좌에 등록했다.
한 대학교가 제공하는 평생교육 시스팀으론 세계 최대규모인 이 개방대학 프로그램의 지난해 4개 학기 강좌수는 16개 부문에 모두 4천5백개,등록학생수는 무려 11만여명이었다. 예술·경영·컴퓨터·디자인·엔지니어링·영화·외국어·해외교육여행 등 생활에 필요하다 싶은 과목치곤 없는 게 없다.
○4천여 강좌개설
경영학부문의 「멕시코에서의 사업」 강의를 듣고 있는 마이클 스톤씨(28)는 퍼시픽 벨사에 근무하는 직장인. 그는 『친구와 멕시코에서 사업을 시작하기로 해 미리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교육 이야기만 나오면 시설과 돈 이야기가 뒤따른다. 그러나 별도의 시설없이도 훌륭한 성인교육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 학교시설은 오로지 학생들만 사용한다. 주말은 물론 평일 오후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간뒤 남겨진 학교 교실은 덩그러니 비어 있다.
독일의 초·중·고학생들은 오후 1시전에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1만7천원 정도의 수업료만 내면 「입맛대로」 필요한 과목을 들을 수 있는 독일 성인교육의 기둥 국민대학(Volkshochschule)은 바로 이 텅빈 교실에서 열린다. 지난해에도 국민대학 수강생수는 8백만명을 넘어섰다.
독일의 수도 본에서 10여㎞ 떨어진 소도시 린츠에 사는 김희진씨(47·교포·회사원)는 봄이 오면 라인강에서 두 아이들과 함께 보트를 탈 생각에 부풀어 있다.
『가족들을 데리고 라인강에서 보트를 타는 독일인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어요. 그래서 린츠국민학교에 개설돼 있는 국민대학 보트운전코스에 3개월 다녔습니다.』
○국교서도 수업
김씨는 1주일에 두번씩 회사에서 퇴근하면 린츠국민학교로 가 보트학교를 운영하는 강사로부터 물결·기상·안전교육을 배운뒤 단번에 면허를 땄다.
고령화사회가 되면서 생애교육을 강화하는 있는 일본의 부인교육도 우리에게 시시하는 바가 크다.
일본은 1920년대에 태어난 여성과 1960년대에 태어난 여성의 평생시간 활용도를 조사한 결과 자녀 결혼후의 여생이 15년에서 26년으로 늘어난다는 전망에 주목했다.
이들 여성층에 대한 계속 교육이 시급하다고 판단한 문부성은 87년 「부인문제 기획추진본부」를 만들어 2000년대를 대비한 신국내행동계획을 확정했다.
그에 따라 대학마다 주부를 위한 공개강좌가 신설됐고 컴퓨터실·공예실 등 고등학교시설도 인근에 사는 주부들에게 개방됐다.
○주부대상 교육도
더 나아가 주부를 대상으로 한 방송대학 프로그램까지 만들어졌다.
우리에게도 평생교육기관은 있다. 한국 방송통신 대학·개방대학 등을 비롯해 대학교에 부설된 평생교육원,각종 사회단체가 마련하고 있는 성인강좌 등등. 그러나 대표적 평생교육 기관인 한국방송 통신대학·개방대학 마져 평생교육의 참뜻에서 벗어나고 있다는게 교육계의 지적이다.
93년 현재 방송통신 대학 재학생중 30세 이상은 29%에 불과하며 입학 평균 경쟁률은 1.6대1. 누구에게나 개방돼 있어야 할 통신교육에서 조차 정원제한 때문에 경쟁을 치르게끔 돼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82년 설립당시 산업체 경력 1년 이상을 입학자격으로 정했던 개방대학은 90년부터 고졸 학력만 있으면 지원이 가능해졌다. 현재 재학생중 무직자는 무력 45.2%,30세 이상은 고작 12.9%.
평생교육 이념에 입각한 고등교육 기회를 부여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된 이들 학교는 4년제 대학에 떨어진 학생들이 「꿩대신 닭」 이란 생각에서 지원하는 「4년제 대학 닮은꼴」이 돼 버렸다.
그 사이 정말로 사회 각 부문에서 재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성인들은 사설학원 밖에 갈 곳이 없어졌다. 오랫동안 우리 교육은 『공부엔 다 때가 있다』는 말이 지배했다. 그러나 그 말은 이제 『교육은 평생 받는 것』이라는 말로 바뀌어야만 한다.<이상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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