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명옥살이1년>3.진실 밝힐 감정.감식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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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수사에서 과학적 감정과 감식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범행의 실체적 진실이 어떠했는지는 결국 과학적 감정과 감식을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감정인이 재판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법원이나 검찰은 감정결과를 중시하게 되고 결정적인 순간에 감정결과가 유.무죄를 가르는 근거가 되는 일은 흔하다.
◇피살시간=金순경은 사건당일 오전7시쯤 파출소에 출근했다가 3시간쯤후 여관에 돌아와보니 李양이 숨져있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李양이 피살된 시간은 이 사건 수사의 가장 핵심이었다.오전7시 이후 숨졌다면 알리바이가 확실하기 때문에 金순경의 범행일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경찰은 모든 정황을「7시 이전 피살」에 맞추기에 바빴고 다른 가능성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사체 발견 시각은 오전10시15분쯤이지만 경찰서 공의인 李모씨가 검시를 한 것은 발견후 8시간이나 지난 오후6시가 넘어서였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112신고후 파출소.경찰서.시경 감식반이 차례로 거쳐간 뒤 사체를 인근 H병원으로 옮긴 후에야 검시를 한 것이다.
검시를 끝낸 후 공의 李씨는 사망 추정시간을 오전6~7시라고적었다. 그러나 李씨는 뒷날 법정에서『10~12시간전(오전8시30분~오전6시30분)에 사망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누군가로부터경찰이 오전6~7시에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렇게 적었다』고 진술했다.공의가 사망시각을 비교적 정 확히 추정하고도 경찰의 사망 추정시각에 맞추었다는 얘기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소견도 제 구실을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국과수 법의학과 李모박사가 부검한 것은 사건 다음날인 11월30일 오후였다.부검후 李박사는 12월2일 소견서를 보내며『정확한 사망시간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고 경찰에 통보했다.정밀검사 결과는 15일정도 지나야 나오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4일 감식 자료를 국과수로 보내며 감정결과를 독촉했다.
金순경의 구속을 위해 증거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李박사는 4일오후『오전3시10분부터 5시10분 사이에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경찰에 통보했고 金순경은 그날 구속됐다. 당시 경찰이 보낸 자료는 항문온도 측정 때 온도계를 3회이상 측정해야 한다는등의 원칙을 지킨 것도 아니었다.또 숨진 李양이 당일 술을 마셨다는 사실은 사망시간 추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사항인데도 빠뜨렸다.이밖에 사체 보존상태 가 이불이발목까지만 덮인 채 완전 나체로 발견됐다든지 손가락을 억지로 펼 수 있을 정도로 굳어 있었다는 등의 기본적 내용도 없을만큼허술한 것이었다.재판과정에서 李박사는 당시 이같은 정황을 알았으면 감정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진 술했다.
◇유류품=현장에서 수거된 모발.휴지등에 대한 감식결과가 12월9일 전후 경찰에 도착해 제3자의 범행임을 말해주고 있었지만모두 무시됐다.
현장 침대위에서 발견된 휴지에서는 혈액형이 金순경과 다른 정액이 검출됐다.또 침대커버와 이불위에서 발견된 머리카락과 음모는 B형 혈액형으로 나타났다.金순경과 李양의 혈액형이 모두 A형이었던 까닭에 쉽게 제3자의 개입을 떠올릴 수 있었다.뒤늦게밝혀졌지만 휴지의 정액은 혈액형이 B형인 진범 徐군이 현장에서자위행위를 한 흔적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가장 전문적이고 권위가 있어야 할 검시나 부검.현장감식이 얼마나 비과학적.형식적으로 이뤄지고 또 수사기관의 편의에 따라 이용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崔相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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