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두희 “유언에 가까운 진술” 「월간중앙」 신년호 증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김지웅·장은산이 백범암살 밀명”/암살전날 “마지막 주사위는 안 소위가…”/경교장에 접근하려 한독당 위장 입당
백범 김구선생 암살범 안두희씨(77)가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그것도 물리적 강제가 아닌,스스로 녹음기 앞에 앉아 무려 1백21시간 동안 백범 암살에 얽힌 진상을 털어놓았다. 『월간중앙』 94년 1월호 관련기사(「안두희의 최후증언」)에 따르면 안씨는 「이게 마지막 유언에 가까운 진술」 「처음으로 진실을 고해하는 진술」이란 심경 아래 44년전 자신의 범행전후 과정을 상세히 밝혔다.
이 증언에서 안씨는 49년 당시 육군 포병소위였던 자신이 희대의 모사 김지웅과 포병사령관 장은산중령의 사주를 받아 호시탐탐 김구 암살 기회를 노렸다고 털어 놓았다.
아울러 안씨는 김구의 거처인 경교장(지금은 고려병원 건물)에 접근할 목적으로 한국독립당(위원장 김구)에 위장 입당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증언했다.
안씨의 이같은 진술은 지난 15일 국회 법사위에 만들어진 「백범 김구시해 배후진상조사위」(위원장 강신옥의원) 활동을 앞두고 이루어진 것이어서 더욱 중요하다.
다음은 「안두희 증언」의 축약이다.
근래에 내 기운이 아주 쇠잔해 버렸고,또 3년전에는 생각지도 않은 무슨 중풍이란 중병에 걸려 반신불수가 됐다. 이 마당에선 처음으로 진실을 고해하는 증언이 될 것을 다짐하며 나의 과오를 솔직히 고백하려 한다. 이는 또한 외국에 가 있는 자식들과 처에 대한 마지막 유언에 가까운 진술이 될 것이다.
나는 1947년 봄 고향(평북 용암포)을 떠나 월남,서울에서 서북청년단 종로지부에서 타공활동을 했었다. 그러다 같은 서청단원인 홍종만의 소개로 희대의 정치브로커 김지웅을 알게됐고,그와 자주 만났다. 후암동에 있는 그의 호화스런 저택에 초대받아 간 적도 있다.
그후 나는 사관학교(육사 8기 특별3반)에 입교,포병장교가 됐다. 김지웅의 음모에 따라 한국독립당에 입당한 것은 그 직후의 일이다. 어느날 부대로 김지웅이가 면회를 왔다. 그는 『내 지금 장은산 포병사령관을 만나러 가니까니 좀 있다가 와서 만나자』며 내 얼굴만 보고 나가는 것이었다. 30분쯤 후 장 포병사령관실로 불려갓다. 장 사령관은 이런저런 얘기끝에 이렇게 밀명아닌 밀명을 내렸다.
『참 김지웅씨한테 들으니까 좋은 정보수집을 하기 위해서 안 소위가 한독당에 가입했고,한독당 조직부장 김학규하고도 벌써 두어번 만났다고 하는데,왜 그저 일요일 같은 때 경교장 출입을 안하는가. 일요일엔 경교장에 드나들면서,김구선생도 가까이 할겸 그 사람들 조직도 좀 파헤쳐 보라.』
그 뒤 일요일 아침 김학규 조직부장을 만나 경교장 출입을 부탁해 김구선생을 서너차례 만났다.
49년 6월25일,그러니까 백범을 암살하기 하루 전날 나는 김지웅·홍종만과 함께 서울대병원에 입원중인 장은산 포병사령관의 병실로 찾아갔다. 그동안 장은 홍종만을 비롯한 암살 행동대원들을 동원,백범암살 기회를 노렸으나 모두 실패로 끝나 매우 신경질적이었다.
『인제 뭐 이것두 저것두 안되면 마지막 주사위 밖에 없다. 마지막 주사위는 안 소위가 하는 거 알지 않는가. 그저 나중에 죽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너밖에 할 사람이 없다.』 뭐 안하갔다구두 못 그럴 분위기였다. 그저 하겠시다,그러구선 나왔다.
일요일 오전 나는 정상을 한채 군복을 입고 권총까지 찬채로 경교장으로 갔다. 그때가 12시쯤이었는데 내 마음으론 명배우가 돼야 겠다는 생각으로 현관문을 열고 구두를 벗으니 비서들이 반가이 맞아 주었다.
경교장 2층으로 올라가 깍듯이 경례하고 앉았다. 『오래 간만이 됐다,안군.』 『예,그렇게 됐습니다.』 이렇게 몇마디 얘기를 했다.
그러다 그대로 그저 나도 모르게 총을 빼자마자 한발 갈기니까니,선생은 벌써 어데 두골에 맞아서 말두 못하구 팍 쓰러지는데,그 다음에 뭐 그저 무조건,몇방 더 쏜 기억이 난다. 그럭하구선 완전히 선생이 쓰러지드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