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D제작사,상업적 계산에 급급-원작 멋대로 가위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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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국내 LD(레이저 디스크)제작사들이 상업성을 앞세워 원작을 멋대로 삭제해 발매하는 경우가 많아 팬들의 비난을 받고있다.
최근 발매된 마틴 스코시스 감독,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영화『분노의 주먹』(Raging Bull) LD의 경우 제작사인 SKC에서 원래 러닝 타임이 1백28분인 이 영화를 11분을 자른 1백17분짜리로 만들었다.
SKC에서 이렇게 무단 삭제한 것은 특별히 公倫심의에서 문제된 부분이 있다거나 하는 외부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1장짜리 LD에 담으려는 얄팍한 계산 때문이다.
LD 한장에는 기술적으로 앞뒷면 각각 1시간씩 2시간 이상을담을수 없다.따라서 1백28분짜리 영화를 원상태대로 담으려면 LD 2장으로 내야만 한다.하지만 제작사에서는 2장짜리면 값이올라 그만큼 판매량이 줄어든다고 판단해 1장짜 리로 내기위해 무단삭제한 것이다.
『배트맨 2』나 『똑바로 살아라』같은 영화도 LD로 발매되면서 일부가 삭제되었다.
SKC는 지난해에도 정지영감독의 『하얀 전쟁』을 비디오로 발매하면서 무단삭제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그러나 LD는 비디오테이프와 달리 대여해보는 사람보다는 소장하기위해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서 이러한 무단삭제는 치명적인 결함으로 지적된다.
업계 관계자들도 현재 LD시장이 한창 성장하고 있는 와중에서『이런 무단삭제가 자꾸 발생해서는 결과적으로 시장자체를 위축시킬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분노의 주먹』의 무단삭제에 특히 팬들이 흥분하는 큰 이유는이 영화가 80년대 미국영화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영화이기때문이다.50년대 미들급 세계챔피언을 지냈던 권투선수 제이크 라모타의 일대기를 그린 이 영화는 평범한 권투 영화나 전기영화가 아니다.
비뚤어진 자부심 때문에 결국은 자신의 삶을 망쳐버리는 편집광적 사나이에 대한 비정한 기록이라고 할만한 영화로 흑백화면의 형식미가 뛰어나다.특히 이동촬영기술을 현란하게 구사한 박력있는복싱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평가받 고 있다.
지난해 말 영국의 영화전문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지에서 선정한 「영화감독들이 뽑은 세계영화사상 베스트 10」에서도 이 영화는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에 이어 2위를 차지해 그 작품성을 다시 한번 입증한 바 있다.
〈林載喆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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