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법원 무엇이 문제인가(누명옥살이 1년: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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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허술한 초동수사 현장보존 시늉만/감식경찰관 “전문교육 받은적 없다”/증거로 범인찾는 기본조차 안갖춰
강력사건에서 현장보존은 생명과 다름없다.
현장상황과 증거물에서 범인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순경 사건은 초동수사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장에서 김 순경을 범인이라고 단정했으므로 제3자의 범행 가능성을 시사하는 정황들은 오히려 수사를 방해하는 요소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운동화 발자국=이양이 목졸려 숨진 침대시트 위에서 운동화 자국 2개가 발견됐는데도 경찰은 누구의 것인지조차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제3자의 침입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김 순경의 범행을 뒷받침할 물적 증거로도 필요했을텐데 수사의 기본조차 무시해 버렸다. 사건 이틀후 작성한 여관주인의 참고인 조서에 『김 순경 일행이 투숙하기 전 시트를 살펴봤는데 발자국은 없었다』는 진술이 나오는데도 아무도 이를 의심하지 않고 넘겼다.
뒤늦게 진범인 서군(19)이 붙잡힌뒤 이 발자국이 서군의 것으로 드러났으므로 당시 발자국 주인만 정확히 추적했더라도 김 순경이 살인범이 아니라는 사실은 밝힐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서군이 검거된뒤 현장감식을 담당했던 감식반 김영길경위는 검찰에서 왜 운동화 자국을 추적하지 않았느냐는 추궁을 받았다, 이때 김 경위는 『족직이 희미할 뿐아니라 범인의 것이라면 2개만 생겼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답변했다. 또 『여관에 도착했을 때는 사체 발견후 4∼5시간이 흐른 뒤여서 그 사이에 파출소·경찰서 직원 등 많은 사람이 다녀갔기 때문에 가치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더구나 김 경위는 『일반수사를 담당하다 사건발생 석달전에 감식계로 배치받았으나 감식 전문교육은 받지 않았다』고 진술해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가장 과학적인 전문지식을 갖추야 할 현장감식을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맡았던 것이다.
현장보존·초동수사가 얼마나 엉터리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수표=현장에서 없어진 이양의 10만원권 수표 4장중 3장이 사건 나흘만인 12월3일 은행에서 회수된 사실을 알고도 경찰은 수표의 유통경로를 추적하지 않았다. 이 수표는 이양이 카페 여주인으로부터 사건전날 빌린 것이었다.
경찰이 작성한 조서에는 김 순경이 범행후 차를 타고 달리며 수표를 창밖으로 버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되어 있다. 현직 경찰관이 살인을 한 후 피해자가 갖고 있던 수표를 가져다 차를 타고가며 출근길 도로변에 버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회수된 수표에는 「허진헌」·「수한남」 이라는 가명과 전화번호가 이서돼 있어 필적 감정·전화번호 추적수사 등이 필수적이었으나 경찰은 이를 외면했다. 시간상 행적으로 따져보면 김 순경은 계속 경찰에서 조사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 수표를 사용할 수 없었다. 결국 수표를 사용한 사람은 제3의 인물이란 뜻이다. 비록 길거리에서 주워 사용한 수표였다 하더라도 경찰은 사용자를 찾아냈어야 마땅했다.
◇여관방 열쇠=경찰은 사건당일 김 순경과 이양이 투숙했던 203호실의 열쇠가 없어진 사실을 간과했다. 여관 여주인 홍모씨가 평소 열쇠는 손님에게 주지 않고 자신이 직접 관리한다고 진술했는데도 없어진 열쇠를 찾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경찰은 당시 홍씨가 『3∼4』일 전 투숙했던 단골손님이 가져간 것 같다』고 진술해 더 이상 조사하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이 경우 마땅히 단골손님과 열쇠를 찾아내 의문을 남기지 않아야 되는 것이 초동수사의 기본이라는게 베테랑 수사관들이 지적이다.
진범 서군이 당시 열쇠를 훔쳐 범행한 것으로 밝혀진 만큼 열쇠만 추적했더라도 끝까지 김 순경을 범인으로 몰고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최상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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