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쪽형… 파격형… 뚝심형… 논리형/이회창 내각의 개성파 4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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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회창총리/청와대 반대 개의치 않고 원칙고수/“모두 실세장관” 강조 최 내무 견제
새로 출범한 김영삼대통령 집권2기 내각은 「소신과 개성」이라는 짙은 색깔을 띠고 있다. 이 컬러를 대표하는 이는 누가 뭐래도 이회창 국무총리다.
이 총리는 예상대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22일 국무위원이 처음 모인 자리에서 「정권 중반기 승부론」 「평균실세론」을 선보였다.
이 총리는 『우리 내각은 향후 1∼2년에 승부를 걸고 국정의 확고한 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실세장관이니,허세장관이니 하는데 우리 모두 실세가 되어야 한다』는 말로 끝냈다. 그는 또 『우리 내각은 향후 1∼2년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승부론을 선보였다. 참모라면 못쓸 표현이었다. 비서실이 사전에 원고를 준비했으나 그는 감사원장 때처럼 자신이 전날 밤늦게까지 직접 쓴 메모를 보며 얘기했다. 한사람 건너 옆에는 실세 최형우 내무장관이 앉아 있었다. 보통총리라면 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이 총리의 출발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그가 어디까지 갈 것이며 과거의 총리들과는 얼마나 다를까』 궁금해하고 있다. 대통령 중심제하에서 어쩔 수 없는 권력의 구조적인 한계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장시절 그는 법해석에 바탕을 둔 원칙을 관철하는데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김 대통령이 정치보복 인상을 우려하여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반대했건만 그는 밀어붙였다.
그는 소신을 표현,전달하는 일에는 많은 투자를 한다. 전직 대통령 조사문제를 법리적으로 해석한 기자회견문은 자신이 직접 쓰고 거의 암기했다.
이 총리는 자기관리에도 철저하다. 헌법상 독립기관의 장으로서 감사원의 위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일들은 자제했다.
김 대통령과 정례회동을 처음 시작할 무렵 청와대에서는 『두분이 만나는 장면을 매스컴에 보도하자』고 제안했다. 이 총리는 감사원의 독립적 지위에 좋지않은 인상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고 한다.
이 총리는 같은 맥락에서 원장시절 박관용 청와대 비서실장의 면담요청에 대해 수락을 아꼈다고 측근들은 소개했다.
그는 정부행사때 헌법기관인 감사원장의 자리가 정부조직법에 있는 부총리옆에 마련되는데 대해 불쾌감을 느낀다고 주변에 털어놓은 적이 있다.
이 총리의 이런 소신과 성격으로 볼때 과거와 같이 자리만 지키는 총리가 되는 상황은 견디지 못할 것 같다. 그는 의전 총리·얼굴마담으로 전락하게 되면 과감히 「행동」에 들어갈 것이 틀림없다.
김 대통령은 그를 무척 신임하고 있다.
그리고 복지부동하는 공무원들에게 강침을 놓으려 그를 골랐다. 그래서 김 대통령은 권력의 미온함이 허락하는한 그에게 상당한 재량권을 부여할 것 같다.
그러나 이 총리의 행보가 대통령중심제의 본질적 권력구조와 부닥치게 될 때 어떤 파문이 일어나게 될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김진기자>
◎특이한 언행… “검은양복대신 밝은옷 입어라”/정 부총리/결심하면 밀어부치기… 쓴소리 아랑곳 안해/최 내무/“1가구 국방비 백만원인데” 관리허술 질타/이 국방
▷정재석부총리◁
○…정재석 신임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의 파격적인 언행이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그는 이미 4년전에 환갑이 넘어 머리는 백발인데다 얼굴엔 주름살이 깊다. 그러나 생각만큼은 더없이 젊고 싱싱하다. 파격을 생산하는 원천이 바로 그의 젊고 싱싱한 사고방식이다.
그는 22일 취임식장에서 기획원 직원들에게 『검은색 옷만 입지말고 밝은 색의 콤비나 핑크빛 와이셔츠같은 옷도 좀 입어요』라고 이색주문을 했다. 딱딱한 분위기가 생각마저 굳게 만든다는 얘기다.
취임사를 하려는데 마이크 소리가 잘 나오지 않자 『기획원 마이크가 어째…. 기획원이 기능을 안하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기획원은 이제 다른 부처를 끌고 가려해서는 안되며 다른 부처의 어려운 일을 나서서 해결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새로운 기획원 역할론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는 또 기획원일은 차관 이하 간부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문제를 안고 있는 해당부처의 「제2차관」역을 맡겠다고 강조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거침없이 소신을 밝힌뒤 『어때,이만하면 잘했지』라고 말해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정 부총리는 수시로 기지와 논리·여유를 보여주면서도 원칙은 늘 존중한다는 것이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의 공통된 평이다.
상공장관이었던 80년 「5·17」 직후 신군부가 국보위 설치령을 국무회의에 올렸을 때 국무위원중 유일하게 『헌법기관을 어떻게 대통령령으로 개폐하느냐』고 맞섰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 일로 그는 결국 장관직을 물러나 최근까지 외대 경영정보대학원에서 후학들을 가르쳤다.
지난 10월 교통부장관으로 입각한후 국정감사를 받을 때 자료준비를 위해 배석한 간부들에게 『(답변은 내가 할테니)모두들 자기자리로 돌아가서 일이나 하라』고 호통치기도 했다.
그는 또 관료보다는 학자로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13년전인 지난 80년에 출간한 『세계속의 한국경제』라는 저서에서 정 부총리는 이미 『앞으로 우리 경제의 진로는 바깥 세계로 계속 뻗어나가 세계경제속에서 우리의 몫과 구실을 키워 나가는 길밖에 없다』고 주장하면서 국제화·개방화를 강조했었다. 정 부총리는 이 책에서 또 자율화와 정부규제완화에 대해서도 확고한 소신을 밝히고 있다.
그의 이같은 안목과 파격이 앞으로의 경제 행정에 어떻게 나타날지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많다.<심상복기자>
▷최형우 내무◁
○…최형우 내무장관의 강한 뚝심과 개성은 길게 각이 진 턱과 불룩한 광대뼈로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런 그가 평소의 개성과 신념에 이를 추진할 수 있는 권한까지 거머쥐었을 때 현실을 돌파하는 추진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민자당 사무총장으로 재산공개에 따른 물갈이와 당사무처 축소가 한창이던 지난 3월 당무회의에서 이치호위원 등이 『민주적 절차와 원칙이 없다』고 비판하자 그는 『긴말하지 않겠다. 아집은 건설적 제안이 못된다』고 일축했다. 이에 이 위원이 『아집이란 말을 취소하라』고 흥분했으나 그는 눈을 감은채 못들은체 무시했다. 그리고 자신의 계획대로 칼을 휘둘렀다.
직설적인 성격은 지난 92년 대통령후보 경선과정에서 적진의 모모 맹장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회유하던 극적 순간에 더 두드러진다.
김 대통령과도 남다른 인연이 있으면서도 노태우 전 대통령쪽에 서있던 모씨가 약속시간에 늦게 도착해 『형님 미안합니다』라고 말하자마자 『성 갈았나』라고 기를 죽인뒤 『이번에 안도와주면 고향에 못내겨갈줄 알아라』며 신체적 위해까지 들먹였다고 한다.
심지어 보스인 김 대통령에게까지도 개성을 감추지 않아 3당 통합당시 이에 반대해 『택도 없다(말도 안된다)』며 술상을 엎고 뛰쳐나오기도 했는데,결국 김 대통령의 설득에 합류하면서도 『평소에 잘하지…』라고 뻣뻣한 자세였다는 후문.<오병상기자>
▷이병태 국방◁
○…이병태 국방장관은 군지휘관 시절부터 매사 비용대 효과를 철저하게 따지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의 이같은 스타일은 취임 첫날 있었던 국방부·합참간부 상견례 현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참석 장성들을 아연 긴장케 했다.
『군은 가구당 1백여만원씩의 국방비와 18가구당 1명씩의 귀중한 물적·인적자원을 지원받고 있다. 컴퓨터가 범람하는 지금 어떻게 이같이 어처구니없는 사기사건이 생기도록 국방관리를 할 수 있느냐.』
매서운 질책에 참석자들은 진땀을 흘려야 했다.
사단장시절 팀스피리트 훈련에 참가하는 장병들에게 『병사 1인당 투자비가 얼마인데 과연 비용만큼의 소득을 얻었는지 각자 결산해보라』고 지시했던 일화도 있다.
그는 보훈처장 시절 「메모장관」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상하간 의사소통 과정에서의 격식이나 의전,비능률을 싫어했다. 시간낭비와 비논리성을 배제하자는 것이다.
지휘관시절부터 그는 장군·이등병할 것 없이 직책이나 계급대신 이름을 잘 부른다. 부하들은 이를 따뜻한 정감의 표시로 흔쾌히 받아들인다.
그는 남의 이름은 물론 숫자를 외우는데도 탁월한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문제해결 방식은 언제나 「체계적인 접근」으로 특정지을 수 있다.
기독교 신자이면서도 두주불사에 줄담배를 즐기는 그는 어떤 질문을 받더라도 알고 있는 그대로를 즉시 답변,「명쾌하다」는 평을 듣는다.<김성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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