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이브의 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3면

이브의 몸/메리엔 J 리가토 지음, 임지원 옮김, 사이언스북스, 1만8천원

"여성은 약간 사이즈가 작을 뿐 실은 남성의 몸과 다를 게 없다는 그간의 통념은 잘못이다." '이브의 몸'이 전하는 이 메시지를 귓등에 흘려 들을 경우 페미니즘의 변주곡이겠거니 하고 대충 넘어가기 십상일 것이다. 그게 아니다. 이 책은 의학적 진실 쪽의 메시지를 전한다. 유방.자궁을 제외한 여성의 신체기관들은 남성들과 똑같다는 가정은 거대한 실수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의학계의 주류는 지금도 그런 전제 아래 환자를 다룬다. 미 컬럼비아대의 심장 전문의로 2002년 미국의학여성협회가 선정한 '과학부문 올해의 최고여성'인 저자의 의대생 시절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해부학 강의실에서는 시체가 남녀인지 여부를 채 따지지조차 않았다.

성경 말씀대로,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온 이브란 '작은 아담'으로 단정해온 것이다. 문제는 이브.아담의 몸은 동일하다는 가정은 최근 들어 새롭게 뒤집히는 중이다. 남녀 사이에는 "생각지 못했던 중대한 차이점"(30쪽)이 존재하며, 질병을 겪는 방식도 다르다. 치료 역시 달라야 한다. '성차를 고려한 의학(gender-specific medicine)'을 키워드로 하는 이 선구적 저작은 그렇게 주장한다.

보자. 여성의 경우 음식이 위장관을 통과하는 시간이 남성보다 훨씬 길다. 여성의 간에서 만들어지는 담즙도 남성과 다르다. 과민성 대장증후군과 담석이 여성에게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알고보니 뇌부터 다르다. "뇌는 자궁.고환만큼이나 성차를 나타낸다"는 단정적인 주장마저 이 책은 주저하지 않는다.

여성 뇌의 크기는 남자보다 15%가 작다. 그런데도 대뇌피질에 유별나게도 남성보다 뉴런이 11% 많다. 눈 바로 뒷부분의 이 뉴런은 왜 여성들이 언어와 음악 분야에서 남성을 앞서는지 설명해준다.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임신 중 흡연한 어머니의 딸은 비흡연 어머니가 나은 딸에 비해 성인이 됐을 때 흡연 가능성이 네배나 높다. 단 아들은 그런 경향에서 자유로우니 신기한 일이다.

흔히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규정하는 것이 염색체.호르몬으로 알지만, 저자는 "유전자와 호르몬은 성차(性差)의 일부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생물학적 성(sex) 말고도 사회적 성(gender)이라는 요인, 환경 등이 '이브의 몸'과 '아담의 몸'을 만든다. 궁금한 게 있다. 서양의학의 이런 남성중심주의는 성차별주의의 결과일까?

외려 그 반대다. 즉 임신한 여성을 위험한 인체 실험에서 제외해주자는 배려였다. 이제 미 국립보건원조차 그런 보호주의를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대신 공정성 유지 정책 쪽으로 돌아섰다. 그걸 환영하는 이 책은 앞으로 여성전용 약품, 여성진료 전문의 등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들려준다.

아쉬운 것은 이 책이 '읽는 맛'에서 많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포함해 훌륭한 논픽션 소재일 수도 있었는데, 서술은 밋밋하고 책 구성은 딱딱하다. 매뉴얼 냄새가 짙은 것이다. 저자 글솜씨의 한계, 그리고 폐.뇌.골격계 등 딱딱한 장절(章節) 구성이라는 약점 때문이다. 그런 한계를 의학적 사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가려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조우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