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증오의 대상이었던 김지하 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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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이 14일 오후 종로의 한 카페에서 열린 세계문화기행서 '예감'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최후의 국내파'로 불리던 시인 김지하(66)씨가 미국을 다녀왔다. 미국은 그에게 해묵은 '만성 두통'이었다. 젊은 시절 '제국주의'로 각인된 미국은 그에게 저항과 투쟁.증오의 대상이었다. 오래전 미국 하와이대에서 전 미국 대학 순회 강연 제의가 왔을 때도 거절했다. 뉴욕 사회과학대학원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준다고 할 때도 손을 내저었다. "노신영 국가안전기획부장(1982~85년)의 해외 유람 제의에도 고개를 저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던 그가 최근 미국 땅을 밟았다. 이전 두 차례의 짤막한 '얼치기 여행'과 달리 '세계사적 보편성' 차원에서 미국을 알고 싶다는 절실함 때문이었다고 했다. 뉴욕.보스턴.댈러스.로스앤젤레스(LA).그랜드캐년.제롬시티.휴스턴.워싱턴DC 등 구석구석을 돌며 그는 '김지하의 미국'을 허물었다고 말했다.

"노스 팜 스프링스의 거대한 풍력 기지를 보고 깜짝 놀랐죠. 수천, 수만, 수십만 기의 풍력 발전기가 산과 언덕.계곡에서 빙빙 돌아가고 있었죠. 에너지 문제에 대한 현실적 대안을, 그것도 거대하게 준비하고 있더군요."

김 시인에게 그동안 미국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내가 미국에 가면 거대한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 끝나 버리는 게 아닌가 싶었죠. 그런 두려움이 내 안에 깊이 깔려 있더군요. 출발 직전의 두통도 그래서 생겨난 거였겠죠."

그런데 그는 미국을 돌며 오히려 '여백'을 발견했다고 했다. "생태학에선 여백을 중시해요. 오염 지역이 있더라도 주위에 강이나 숲 등의 여백이 있으면 쉽게 정화된다고 보죠. 애틀랜타에서 LA로 달려가는데 거대한 여백을 봤어요. 그런 엄청난 정화력을 봤죠."

그는 애리조나 사막 한가운데에 서서야 비로소 웃음이 터졌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물었다. '야, 이놈아. 미국이 그렇게 무섭더냐'고. "그동안 두통약을 아무리 먹어도 소용이 없었죠. 그런데 미국 땅을 직접 밟고 부딪쳐 보니 거짓말처럼 두통이 가시더군요. 귀국한 뒤에도 두통이 없어요."

김 시인은 그렇게 미국을 돌았다. 또 아시아를 돌고, 유럽을 돌았다. 그리고 시인이 감지하는 인간과 신, 역사와 미래의 통찰과 예지를 묶어 '예감'(이룸, 1만7900원)이란 제목의 책을 냈다.

그는 "가장 잊을 수 없는 지역은 중앙아시아였다"며 "카자흐스탄에서 던진 물음에 대한 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현지에서 "카자흐에서 신의 이름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답은 "'한'이다"였다. 그는 다시 물었다. "그 뜻이 뭐냐?" 의미심장한 답이 돌아왔다. "'영원한 푸른 하늘'이다." 시인은 거기서 '신(神)의 공통분모'를 봤다. '한'이란 단어는 아시아를 관통하며 통용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은 몽골에선 '칸'이 된다. 아시아에선 임금과 우주.하느님을 모두 '한'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저는 그들의 신앙이 범신론인 줄 알았죠. 그런데 유일신론이더군요. 즉 유일신과 범신의 본질을 하나로 보는 '범재신론(汎在神論)'이죠. 그런 신관을 아시아 대륙의 끝과 끝을 오가며 공유한 거죠. 그러한 거대한 소통과 교류가 역사 속에 있었던 거죠."

김 시인은 그것이 요즘 젊은이들의 정서와 똑 닮았다고 했다. 개체적이며, 동시에 융합적이란 얘기였다. "아시아의 옛 경제활동에는 '교환'과 '호혜'가 함께 있었죠. 시장도 있고, 재분배도 있었던 거죠. 저는 거기서 미래와 희망을 봅니다. 앞으로는 생태계와 시장의 관계를 함께 고려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요. 또 그건 고대로부터 있던 시장의 형태이기도 하죠."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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