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뜸들이는 개각… 일손놓은 부처/이 총리 “제청권행사” 내용에 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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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5배수 압축… 재산·과거 추적/민주 “국정공백 부른다” 조속 단행 촉구
개각이 늦어지고 있다.
총리임명과 동시에 개각명단이 발표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6공 출발 때는 모양을 내기 위해 총리와 협의하는 장면을 연출하느라 일부러 하루 이틀 늦춘적은 있으나 이번처럼 늦어진 일은 없었다.
국무위원들은 이미 일괄 사표를 제출하여 사표수리 여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아래 직원들 역시 온통 장관 인사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자연히 일은 뒷전이고 삼삼오오 모여서 인사정보를 교환하기에 바쁘다.
청와대에서는 17일 오전엔 개각발표가 20일께라고 일단 밝혔으나 18일 들어와서는 21일 이후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첫 조각 실수 참작
개각이 늦어지고 있는데 대한 청와대쪽의 공식적인 설명은 두가지다.
우선 18일 열린 쌀개방과 관련한 국회 대정부 질문을 현 내각으로 하여금 대처토록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새술은 새부대에」라는 말이 있듯이 물러갈 장관들이 쌀문제에 대한 부담을 모두 걸머지고 나가고,새 내각은 새 출발을 시키겠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내각의 구성은 국무총리의 제청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헌법조항에 충실하겠다는 것이다.
이 역시 충분한 이유가 된다. 특히 감사원장 시절 『감사원은 대통령으로부터도 독립된 기관』이라고 말했던 이회창총리는 취임후 기자회견에서 총리의 제청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따라서 개각이 지연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로도 어느정도 설명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말고 여러가지 정치적 복선과 사정이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청와대가 개각을 단순히 행정부의 인사교체라는 의미외에 정국의 국면전환용으로 이용하겠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새 내각 인선의 어려움 때문이다.
총리의 경질이 급작스럽게 이루어져 후속인사의 준비가 안된데다 인사의 전체구도가 아직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지난번 첫 조각때의 실수도 고려하고 있다.
기용할 인사에 대한 사전 스크린을 제대로 하지 않아 여러 부작용을 야기시켰다. 따라서 철저한 사전 검색을 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현재 부처에 따라서 3배수 또는 5배수로 인선하여 60여명에 대한 재산관계와 과거를 추적하고 있다.
재산이 과다하거나 5,6공 관련자는 역시 가급적 배제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이번 개각인선을 둘러싸고 여권내 계파간 경쟁이 치열한 것도 개각이 늦어지는 이유중의 하나다.
황인성 내각을 무소신·무기력·무능으로 몰아 퇴진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던 소위 상도동 가신그룹은 인선의 기본을 강한 개혁의지 여부에 두고 있는 반면 청와대를 비롯한 안기부·경찰 등 공식 참모계선이나 유관기관에서는 경영관리능력 등에 두고 있는 것. 물론 청와대 등 정부에도 가신그룹이 상당수 있어 공·사 계선이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출신별로 기본인식·구상이 다른게 사실.
다만 신임 각료가 조직 장악력·업무추진력을 갖춰야 한다는데는 의견이 접근하고 있는데 비가신 계열이 원만한 성격·포용력을 강조하는 반면 가신그룹은 개혁을 앞세우고 있다.
가신그룹은 지난 1년의 국정운영이 김영삼대통령이나 국민의 기대에 못미친 가장 큰 요인이 개혁의지 부족에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새 내각에는 개혁을 끌고 갈 수 있는 가신그룹 인사가 대거 참여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반면 일부 관료출신이나 민정계 인사들은 지난 한햇동안 내무공무원을 비롯,많은 공무원들이 일을 기피한 것이 사정서슬 때문인데 무슨 소리냐고 반박하고 있다.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으나 먹게 할 수는 없듯이 공무원들을 윽박지르는 식으로 다루면 될 일도 안된다는 것이다.
○박 실장 균형역할
이같은 기본인식의 차이 때문에 현 각료나 후임으로 거명되는 인사에 대한 평가가 정반대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완상 통일부총리,김두희 법무·이인제 노동장관이나 김영수 청와대 민정수석 등을 둘러싼 시비가 전형적인 예.
「반」 가신그룹인 박관용 청와대 비서실장은 때로는 가신그룹의 견해를,때로는 비가신그룹의 주장을 지지하면서 균형을 잡기에 부심.
○…정부부처는 깐깐한 이 총리를 맞은데다 대폭 개각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여서 단체로 긴장하면서도 일손을 놓은채 뒤숭숭한 분위기.
이 총리임명이 발표된후 독자채널 등을 통해 부처의 분위기를 탐문했던 총리실 관계자들은 『부처 간부들이 바짝 긴장해 있는 것 같다』고 소개.
한 관계자는 『한마디로 김 대통령은 행정부 개혁이 미흡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이 총리가 앞으로 무슨 카드를 내놓을지 공무원들은 신경쓰고 있다』고 설명. 부처별로 간부들이 이 총리 주변인물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총리의 성격과 업무스타일을 「취재」하는 사례가 여럿 발견되고 있는데 제일 많은 문의를 받는 이들은 감사원 간부진.
○개혁방향에 촉각
공무원들은 이 총리의 17일 취임사를 주목했었는데 이 총리가 역시 중단없는 개혁을 강조하자 구체적으로 개혁·사정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굴러갈지 촉각.
총리의 각료제청권을 지킬 의지를 표시한 이 총리는 내주 월요일(20일) 오전쯤 김 대통령을 만나 의견을 제시할 것으로 보이는데 김 대통령이 이를 얼마나 수용하느냐에 따라 인선시간이 더 걸릴 가능성이 있는 것.
그래서 공무원 사이에서는 『내년의 새로운 업무를 준비하려면 연말까지는 새 내각체제가 갖추어져야 한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
○…민주당은 쌀정국이 개각정국으로 바뀌며 정가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이를 「국정공백」 상태로 규정하며 즉각 개각 등 조속한 정국수습을 촉구.
이기택대표는 18일 아침 자택에서 『개각과 민자당 당직자들의 사표제출 문제로 국정공백이 이뤄지고 있다』며 『정기국회를 마무리하면서 정부·여당 집안사정으로 정치관계법의 연내 마무리조차 안되고 있다』고 집중성토.
이 대표는 최근 대통령에 대한 비난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것과 관련,『쌀개방이 확정되고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실패했기에 대통령의 책임을 요구할 뿐이다. 하야를 요구한 것도 아닌데 그 정도도 안한다면 무슨 야당 대표냐』고 반문. 박지원대변인도 『UR 대책마련 등 이렇게 중차대한 시기에 도대체 개각·민자당 당직자·청와대 비서진들의 개편으로 국정공백을 초래하며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가』라고 대통령의 국가경영 방식에 비난을 집중.
박 대변인은 『오늘 대정부 질문만 해도 내일 모레 물러날 장관에게 무슨 질문을 하겠는가』라며 『고장난 물레방아 앞에서 노래연습하는 격』이라고 비아냥.<김현일·김기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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