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학교환경(선진교육개혁:2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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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명만 넘어도 “콩나물교실”/법으로 기준제한… 한명 늘자 “큰일”/컨테이너 교실로 개조 과밀 해결/「즐겁고 편한」 학교만들기 경쟁/한반 20명 안팎… 개인지도식 수업
독일 본에서 상류를 따라 10여㎞ 달리면 린츠라는 그림같은 산마을이 나타난다. 인구는 7천명밖에 안되지만 강을 내려다보고 서있는 고딕양식의 옛성들과 마을 곳곳에 조성된 샛노란 은행나무숲이 인상적이다.
이 조용한 마을의 린츠국민학교에선 지난 10월 교장·학부모·시교육청 관리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할 문제가 생겼다.
동독 주민과 외국인 유입 급증으로 1학년 한 학급 학생수가 31명으로 늘어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한 반 학생수가 웬만하면 20명을 넘지 않는 이 나라에서 31명이면 엄청난 과밀학급인데다 린츠가 속하고 있는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의 교육법이 학급당 학생수를 30명 이내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가지 안이 제시됐다. 첫째는 인근 학교로 학생을 전학시키는 방법,둘째 학교에서 3백m쯤 아래 떨어진 빈성터에 분교를 개설하는 방법,셋째 최근 개발되기 시작한 주거용 컨테이너를 교실용으로 운동장에 설치하는 방법이었다. 5명으로 구성된 학부모 대표는 토론끝에 컨테이너를 가설키로 결정했다. 교장은 이 컨테이너 학급에서 수험받을 학생 16명을 「직권으로」 뽑았다. 이 학교 학부모회장 김희진씨(47·교포·회사원)는 『학부모들의 의견을 모아 일단 컨테이너 교실을 도입키로 한 뒤엔 왜 내 아이가 가건물에서 수업받아야 하느냐 등 부모들의 항의는 일절 없었다』고 말했다.
학생 31명 이면 초과밀학급으로 분류돼 학교 관계자들이 큰 일 벌어졌다고 분산 떠는 것이 조금 기이했고 호들갑스럽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예산이 따라오지 못하자 며칠을 두고 이리 저리 궁리한 끝에 마침내 해결책을 찾아낸 그들의 집요하고 진지한 모습에서 「선진교육의 비결」을 짐작하게 됐다.
교육환경에 큰 영향을 미칠 사안에 대한 학부모의 참여,학교장의 고유권한에 대한 존중,지시하기 보다 도와주기에 익숙한 시교육청의 서비스정신이 린츠국민학교의 「콩나물교실」 문제를 해결한 노하우였다.
○교단이 없는 학급
유럽의 초·중·고등학교 학급 학생들이 20명 안팎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그들의 수업방식 자체가 교사·학생의 개별접촉을 극대화하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보다 즐겁고 쾌적한 학교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교육적 배려가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10월18일 오전 본시 중심에 자리잡은 에리히 캐스트너 국민학교 2학년 첫째시간. 교실에는 26명의 어린이들이 5개 그룹으로 널찍이 떨어져 배치돼있고 교사는 그 사이를 끊임없이 움직이며 학생옆에 차례로 붙어 개인지도를 하고 있었다.
교실에 칠판은 있으나 교단이 없다. 교사가 한곳에 붙박혀 강단 강의를 하지 않는 탓이다.
「수의 세계」 과목으로 한장짜리 10단위 덧셈 문제지를 다푼 학생이 손을 들어 「끝났다」는 표시를 하면 교사가 검사하고 바로 「독일어 바로쓰기」 과목으로 들어간다.
『어제 네가 마쳤던 부분이 어디지?』 같은 교과서를 갖고 배우면서도 학생들마다 수업 진도가 다르다. 학생의 능력에 따라 90분 내내 산수만 할 수도 있고 문제를 빨리 푼 학생은 더 높은 수준의 계산 문제지를 받거나 국어수업으로 넘어가게 된다.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와 적성·지능·집중력·손재주·성격 등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다. 뛰어난 학생은 월반시키기도 하고 모자라는 학생은 방과후 개별 지도한다.』
○형형색색의 교실
이 학교 교장이기도 한 레터 라트교사(55)는 『학생수가 30명이 넘으면 이같은 능력별 지도는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즐겁고 쾌적한」 학교를 만들려는 어른들의 노력은 교실수를 확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같은 돈을 들여 학교 건물을 짓더라도 보다 아름답고 예쁜,학생들이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모델을 추구한다. 그래서 그런지 유럽의 많은 학교들은 저마다 독특한 모양새와 색깔,기능상의 특징을 갖고 있다.
프랑스 파리시 서쪽 15㎞에 위치한 위성도시 프아제. 이 도시의 샤를 드골 종합고등학교 캠퍼스는 학교라기 보다 오히려 편안한 음악 공연장처럼 느껴진다. 완만한 곡선으로 처리돼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지붕선,전체의 80%를 대형유리가 차지하는 벽면이 연중 흐린 프랑스 날씨에도 불구하고 맑은 햇살을 받을 수 있게 설계된 3층 건물이다.
1층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정면에는 2층 높이까지 튼 도서관이 자리잡았고 복도 좌우를 따라 녹색으로 칠해진 교실이 늘어섰으며 2층엔 보라색으로 채색된 컴퓨터실·실험실습실 등 학습보조실,3층엔 노란색의 서무실·교장실·교사 휴게실 등이 있다.
일자식 혹은 ㄱ자식 밋밋한 회색 건물 1층에는 현관을 중심으로 교장실·교무실·서무실이 배치되고 한 층을 올라가야 교실이 나타나며 도서실은 한쪽 구석으로 처박혀 있는 우리네 학교의 「생산공장」 같은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이 학교 교장인 클레르여사(54)는 『건물 설계를 하면서 학생들이 이용하기 편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모든 연구·수업과정이 공개돼야 한다는 두가지 개념을 일관되게 적용했다』고 강조했다.
○교장이 직접 참여
설계는 공개입찰을 통해 경쟁한 4개의 설계사무소 도면중 하나를 골랐다. 프랑스 학교들이 건물을 지을 때 교장이 참여하고 건축회사에 설계를 맡기는 방식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부가 8년전 중앙의 권한을 대폭 지방에 넘겨주는 대대적인 지방자치 개혁을 단행하고부터 학교 건축도 지방 소도시의 자율에 맡겨지게 됐고 각 도시들은 보다 「아름답고 편리한」 학교를 만드는 경쟁을 하기 시작했다.
학교들도 자치단체 예산의 범위안에서 자기 색깔을 내는 독특한 캠퍼스를 꾸밀 수 있게 됐다.
교실은 20평,복도는 5평으로 엄격히 규제되고 학교 설계는 각 교육청에 비치된 10개의 표준 설계도중 하나를 선택케 하는 우리의 현실.
교육의 획일은 수업내용과 방식에서 뿐만 아니라 학생을 둘러싸고 있는 물리적인 교실·학교 구조의 몰개성에 의해서도 강화되고 있다.
일제시대 건축양식을 그대로 물려받고 있는 학교 캠퍼스가 학생들의 매력을 끌기 위해선 지역과 지역,학교와 학교가 건물 모양 하나를 놓고도 경쟁을 벌이는 교육자치 활성화가 전제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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