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협상 대표단의 성적표/이장규특파원 제네바에서(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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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일 제네바에서 도착한 정부협상대표단(단장 허신행 농림수산부장관)이 13일 밤(현지시간) 한미 공산품협상을 끝으로 11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지었다.
당초 「쌀시장 고수」라는 힘든(?)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서울을 떠난 대표단은 비록 쌀시장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비교적 유리한 조건으로 쌀시장을 개방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었고,서비스·공산품시장 접근협상 등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이들은 「돈놓고 돈먹는」 도박장(?) 같은 협상분위기속에서 『모든 것이 합의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합의된 것이 아니다』는 말을 되뇌이며 밤을 지새면서 전력투구했다.
협상대표단중 한사람은 『이번 협상에 1백을 기대했다면 70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본다』고 자평하고 『과거 통상협상에서 40정도 밖에 못거둔 것에 비하면 훌륭한 성적』이라고 했다. 이번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대표단이 이런 성과를 거둔 것은 경제부처와 외무부 실무차관보로 구성됨에 따라 본부에 훈령을 기다리는 등의 시간을 줄이고 현지에서 신축적인 대응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주제네바대표부에 「임시정부종합청사」를 차리고 상대국가의 협상전략을 파악하는 등 기민하게 협상의 줄기를 잡아 대처할 수 있었다.
특히 각부 차관보들이 현지에서 분야별로 협상에 임해 효율적인 팀웍을 발휘할 수 있었다.
쌀시장 개방문제로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일본 언론들이 『한국은 정부 고위관리들이 제네바 현장에서 뛰는데 일본정부는 도대체 무엇하느냐』고 비난한 것도 바로 이 때문.
이들은 최소한 농민들에게 『정부가 농촌을 버리지 않는구나』하는 생각을 갖게만해도 큰 성과라고 아직 신중한 태도다.
그러나 협상대표단이 너무 쌀문제를 위해 급조됐고,쌀문제가 워낙 「뜨거운 감자」가 돼 정부 부처내에서 공론화되지 못한채 즉흥적인 대처를 한 것은 물론 한목소리를 내지 못한 아쉬움도 남는다. 단기적이고 조급했던 이번 쌀협상은 우리 정부에는 큰 교훈으로 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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