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TT 정보 어두운 한국취재진/박의준 통일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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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계의 이목이 쏠려있는 제네바의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본부 1층은 구석에는 널찍한 휴게실이 하나 있다. 이곳은 주로 각국 협상대표들이 잠시 머리를 식히거나 협상전략을 짜는 장소로 사용되었지만 요즘은 수십명의 기자들이 모여 기자회견장을 방불케 한다.
특히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시한이 임박함에 따라 세계 1백여개국에서 몰려온 기자들이 「역사적인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이 휴게실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온통 북새통이다.
식사는 샌드위치로 대강 해결하고 휴대용 전화기를 들고 다니며 파악한 정보를 수시로 본사에 타전하며 UR협상 주역들이 나타나면 쏜살같이 달려가 질문공세를 퍼붓는 등 기자들의 「정보전쟁」은 GATT에서 펼쳐지고 있는 「무역전쟁」 못지 않다.
일본의 경우 소대병력 규모의 특파원이 GATT에 버티고 앉아 최신정보를 얻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기자들의 취재대상은 비단 협상대표들만이 아니다. 상대국 기자들에게서 조그만 정보라도 귀동냥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쌀시장 개방에 대한 한국정부의 입장은 뭐냐』 『한미 양국의 합의사항은 무엇이냐』… 한국기자들에게 쏟아지는 질문공세도 만만치 않다.
취재경쟁이 곧 국익의 각축장이 되고 있는 느낌이다.
한국에서도 물론 상당수 기자들이 파견돼 취재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긴 하지만 GATT 사정에 밝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듯하다. 그래서 협상주역들이 지나가도 얼굴을 몰라 외국기자들이 우르르 몰려가면 그제서야 뒤따라가는 일도 더러 벌어진다.
미국·일본·영국 등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고,우리보다 경제사정이 어려운 중국·말레이시아·인도 등 47개국이 제네바에 상주특파원을 파견하고 있지만 한국의 언론사에서는 단 한명도 나와있지 않다. 유럽공동체(EC) 대표부가 있는 브뤼셀도 거의 비슷한 사정이다.
또 4백여명이 일하는 GATT 사무국에도 한국사람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한국은 이번 UR 협상에 참가한 세계 1백16개국중 교역규모로 따져 13위(EC를 하나로 묶으면 7위)이고,GATT 분담금도 회원국중 11번째로 많이 내는데도 GATT를 너무 홀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입만 열면 말하는 국제화·개방화의 현주소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앞으로 UR협상이 타결되면 세계각국은 새로운 무역질서속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이 질서를 교통정리할 제네바에서 활발한 외교노력을 벌일게 뻔하다.
이같은 외교노력에서 성공의 관건이 정확한 정보인 점을 감안할 때 제네바에서 우리의 정보능력을 한시 바삐 키워나가는 일이 시급하다는 생각이다.<제네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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