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적신월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프랑스 빵 하면 떠오르는 바게트와 크루아상 가운데 후자는 조찬용이다. 길쭉하고 껍질이 딱딱한 바게트에 비해 크루아상은 말랑말랑하고 촉촉해 목이 컬컬한 아침의 간편식에 적당하다. 이를 따끈한 카페오레에 곁들여 입 안에 넣으면 ‘파리지앵’의 하루가 비로소 시작된다고 한다. 넓적한 식빵밖에 모르던 우리나라에도 88서울올림픽을 전후해 프랑스 빵 체인점이 생겨 크루아상은 우리 식생활에 뿌리를 내렸다.

프랑스어의 크루아상(croissant)은 초승달이란 뜻이다. 빵 모양이 그렇게 생겨 붙은 이름이다. 크루아상의 탄생 배경에는 이론이 분분하지만 역사적 공통분모는 있다. 17세기 후반 유럽의 기독교 세력과 중동 이슬람 세력 간의 전쟁과 문명·종교 충돌에서 비롯됐다는 것, 그리고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과 연관이 깊다는 것이다.

한가지 설. 1680년대에 오스트리아(당시 합스부르크 왕조)의 수도 빈이 초승달 깃발을 앞세운 오스만 튀르크 대군 14만 명에게 장기간 포위된 적이 있다. 보급로가 막혀 도탄에 빠진 시민들은 초승달 모양의 빵을 만들어 씹으며 전의를 다졌다. 다른 설도 있다. 당시 이 전쟁을 도와 오스만 튀르크 군을 패퇴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이웃 폴란드 왕이 “적의 상징을 씹자”고 초승달 모양의 빵을 만들게 했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가 루이 16세에게 시집가면서 이 빵도 프랑스로 건너갔다는 이야기다.

아프가니스탄의 한국인 여성 인질 두 명이 풀려나는 데 큰 역할을 한 적신월사(赤新月社·Red Crescent)는 ‘붉은 초승달(新月)’이란 뜻이다. 19세기 후반부터 전쟁 및 재난 구호사업을 해온 적십자사(赤十字社·Red Cross)와 이름만 다를 뿐 동일한 단체다. 다만 기독교를 연상케 하는 십자 로고가 부담스러워 무슬림의 신앙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초승달을 썼을 뿐이다. 이슬람권에서는 터키나 말레이시아처럼 국기에 초승달을 그려넣는 나라가 적잖다.

같은 초승달인데 크루아상은 알면서 “적신월은 처음 들어본다”는 이가 많다. 이미 1929년 국제적으로 공인된 단체명이고 초승달 깃발 아래 봉사활동을 벌이는 나라가 33개국에 이르는데도 말이다.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 ‘알카에다’ ‘탈레반’ 같은 호전적 이미지가 너무 깊이 각인된 건 아닌지, 그 바람에 이슬람의 밝은 면을 균형 있게 알고자 하는 지적 호기심마저 알게 모르게 시들어버린 건 아닌지 되돌아보자.
 

홍승일 경제부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