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반 내린 비 탓에 냉방병 환자 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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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거나 흐린 날씨가 벌써 한 달 보름째 계속되고 있다. 6월 21일(기상청의 공식 발표 기준)이후 장마 전선이 한 달 이상 한반도를 오르락 내리락 했고, 장마에 이어 게릴라성 집중 호우가 계속되고 있다. 열대성 저기압으로 인한 집중 호우는 장마처럼 하루 종일 비가 내리지는 않는다. 소나기보다 더 집중적으로 비를 퍼붓는 게 특징이다. 이 때문에 올 여름 그 어느 때보다도 바깥 출입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집중 호우 기간에는 열대야까지 겹쳐 밤이 되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다.

실내 생활과 열대야가 거듭되면서 냉방병 환자도 크게 늘고 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에어컨과 선풍기 같은 냉방기기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강북삼성병원의 한 관계자는 “감기인 줄 알고 병원을 찾았다가, 냉방병이라는 진단을 듣는 환자가 최근 부쩍 늘었다”고 말한다. 계절적 특성과 이상 기후 때문에 다른 병원도 냉방병 환자들이 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냉방병이란 의학적으로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용어는 아니다. 실내외 온도차가 지나치게 클 때 인체가 이를 견뎌내지 못하는 증상을 두루 일컫는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혈관이 수축되는 과정에서 혈액 순환에 이상이 생길 수 있고, 여러 분야의 자율신경계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이로 인한 증상으로는 두통ㆍ피로ㆍ설사ㆍ소화불량과 함께 정신적 무력감 등이 꼽힌다. 냉방으로 실내 습도가 낮아져, 코가 막히고 기침이 잦아지는 것도 대표적 증상이다. 냉방병을 흔히 감기로 오인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냉방병이 온도와 세균에 의한 것이라면, 감기는 바이러스에 의한 것으로 본질적으로 다르다.

가벼운 냉방병은 일종의 문명병으로, 상당수의 직장인이 경험한다. 직장인 10명 가운데 5명이 경험한 적이 있다고 조사됐을 정도다. 직장인들이 유독 냉방병에 잘 걸리는 이유는 환기 부족 때문이다. 통유리로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중앙 냉난방식 대형 건물이 늘면서 환기 부족으로 인한 두통 등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비에스클리닉의 박용우 원장(가정의학과 전문의)은 “냉방이 잘 되는 대형 빌딩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이 잘 걸린다는 점에서 냉방병을 빌딩 증후군이라고도 한다”고 설명한다. 이 경우는 가벼운 감기처럼 5일 이내에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심지어 사무실에 들어가면 냉방병이 재발하지만, 바깥으로 나오면 아무렇지 않을 때도 있다.

치명적인 냉방병이 없는 것은 아니다. 냉방 기기에 서식하는 세균을 통해 감염되는 폰티악 열병과 레지오넬라병이다. 간단한 열병으로 끝나는 폰티악 열병에 비해, 폐렴 증세를 동반하는 레지오넬라균은 치사율이 무려 20%에 달한다. 1976년 재향 군인 모임에서 처음 보고된 이 병은 이름도 ‘재향 군인’(legionnaire)에서 따왔다. 다만 국내에서 레지오넬라균 집단 감염 사례가 보고된 적은 없다.

전문가들은 주기적으로 환기시켜 주는 것이야말로 냉방병 예방의 지름길이라고 지적한다. 박 원장은 “냉방 기기를 틀 경우는 가습기도 같이 틀어주고, 1시간 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주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그 밖에 가벼운 체조나 운동, 따뜻한 물, 비타민이 풍부한 과일이나 채소 등도 냉방병을 물리치는 데 도움이 된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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