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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쌀개방론 앞장섰다/황 총장과 함께 「십자가」 멘 사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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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불가피” 강조로 「대통령 방패역」 자임/시기 미묘… 향후 입지 고려여부 관심
농민과 사회단체·민주당 등이 쌀시장 개방 저지 범국민투쟁에 나선 가운데 민자당의 김종필대표가 지난달 30일 쌀시장 개방 불가피성을 들고 나왔다. 정부조차도 쌀시장 개방불가 방침만을 되뇌는 민감한 상황에서 김 대표는 매우 하기 어려운 말을 했다.
같은날 황명수 민자당 사무총장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여권의 고위층이 이처럼 공개적으로 쌀시장 개방을 시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한층 관심을 끌고 있다.
김 대표는 이날 당의 재해대책기금 마련을 위한 음악회 참석차 광주를 방문,광주·전남지역 지구당 위원장과 환담하는 자리에서 쌀문제를 꺼냈다. 그는 먼저 쌀시장 개방을 굳힌 일본의 사정을 설명했다.
○여 고위층 첫 언급
『일본에서도 정치적으로 개방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무조건 반대하기 보다는 농업의 경쟁력을 갖추자는 의견이 더 많다. 미국산 쌀보다 더 좋은 쌀을 생산해내면 될 것 아니냐는 이야기인 것이다. 개방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단계적으로 시장을 여는 대신 국민들은 외국쌀을 안먹고 질좋은 일본쌀을 먹으면 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김 대표는 이어 『우리도 이제 내일을 생각해 대응하면서 경쟁력있는 농사를 지어야 할 때가 왔다. 농촌 구조개선사업을 서둘러 먹기 위한 쌀농사가 아니라 돈벌이를 위한 농사를 해야 한다』며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자고 호소했다.
그는 쌀시장 개방반대 여론을 겨냥,『소리만 지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고 일침을 놓았다.
그는 대신 『세상에 최고로 좋은 방법은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적응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면서 『우리도 적응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개방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정부가 과도조치로서 농민들에게 손해가지 않는 대책을 철저히 세운뒤 세계 추세에 적용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쌀시장 개방 해법까지 제시했다.
○“적응 지혜 필요”
황 총장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현재로선 쌀시장 개방 절대불가가 당론』이라면서도 『운명적으로 닥쳐올 문제가 있다면 슬기롭게 극복하는 방법을 찾는게 진짜 용기있는 행위』라고 말했다.
김 대표와 황 총장이 아주 미묘한 시기에 이런 중대한 말을 한 것은 나름대로 목적과 의도가 있기 때문임은 말할 것도 없다. 현재 쌀시장 개방문제로 큰 곤욕을 치르고 있는 김영삼대통령의 방패역을 떠맡겠다는 의도라는 얘기다. 즉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시한(12월15일)이 코앞에 닥쳐있는 상황에서 쌀시장 개방의 불가피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김 대통령과 정부를 대신해 당이 십자가를 지겠다는 각오를 밝힌 것이라는 해석이다.
사실 쌀개방의 불가피성은 정부·여당의 모두가 인정해온 바나 누구도 선뜻 앞장서서 이를 거론치 못했다. 이러한 예민한 문제를 먼저 끄집어내 표적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정부·여당내에서 이러한 어려운 일을 맡을 수 있는 자리가 운신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여당 대표인 자신이라고 판단,스스로 「총대」를 멜 결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최근 사석에서 정부의 미숙한 대처방안과 일부 공직자의 몸사리기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일각서도 호응
김 대표 등의 발언은 그러나 당장 민주당은 물론 농민·사회단체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야기하고 있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에도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민자당내에서조차 『농민 생존권을 무시한 무책임한 발언』 『예산안도 처리되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냐』는 등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당의 도시·관료출신 의원들중 상당수는 『아주 용기있는 발언이며 이를 계기로 쌀시장 개방문제에 대한 공론화가 이루어져 진정 국익에 보탬이 되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다. 물론 전체적으로 보면 소수의견이다.
김 대표가 절대다수의 거센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을리 없다. 그럼에도 김 대표가 「용기있게」 쌀시장 개방 불가피성을 개진한 배경은 ▲경륜있는 정치인으로서 한차원 높은 국익 추구 ▲그 자신의 향후 정치적 입지를 아울러 고려한 것으로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다.<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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