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자유화 한달/금융권 「상품경쟁」 불붙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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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예대 마진폭 줄어 경영합리화 몸살/자금수요 집중되는 내년초가 고비
『자유화이후 금리가 단기적으론 오르고 은행수지도 나아질줄 알았는데 금리가 되레 내려가 사정이 더 어려워졌다. 은행간 금리경쟁이 치열해지고 예대마진이 자꾸 줄어들어 위기감을 느낀다. 사실 그동안 은행 영업은 경영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주어진 여건에서 관리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젠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 경영의 시대가 왔다.』(신한은행 박성희 종합기획부장)
『2단계 금리자유화가 대출금리 중심이어서 예금의 이동은 별로 없을 것으로 보았으나 실명제·금리자유화를 계기로 새 상품이 많이 쏟아져 나오면서 가계자금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조금만 신경쓰면 이자를 더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주부들도 단자사와 투신사를 찾고 같은 은행에서도 신탁예금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제 큰돈만 아니라 작은 돈들도 민감하게 움직이는 시대가 온 것이다. 종전의 영업형태론 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어렵게 됐다.』(조흥은행 황선각 종합기획부 차장)
2단계 금리자유화를 한달동안 「살아본」 시중은행 일선 실무책임자들의 솔직한 평가다. 실명제­금리자유화로 이어지는 금융환경의 변화를 하나같이 실감하고 있다.
금리자유화 한달은 최소한 금리측면에서는 일단 「순풍속의 항해」로 진단된다. 일부에서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금리가 급상승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금리조정이후 시중실세금리는 떨어지기 시작했고 일부 은행에선 이에따라 이미 자유화돼있던 당좌대출·양도성 예금증서(CD) 발행금리를 낮추었다. 이어 우량고객을 상대로 가계대출 금리를 깎아주기 시작했고,고액의 정기예금에 대해선 금리를 높여주는 등 금리경쟁에 불을 댕겼다. 그러나 이같은 금리안정이 「공짜」로 얻어졌을 턱이 없다.
우선 금융기관의 수지상태가 불안해졌고 시중에 통화가 많이 풀렸다.
금융기관의 수지는 경우에 따라 나라전체의 대외신용도와 직결되고,시중에 넘치는 통화는 나라경제의 안정을 해칠 우려가 있다.
「금리자유화를 했는데도 금리가 오르지 않았다」고 좋아만 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제 겨우 한달 해보고 금리자유화를 평가하긴 이르다. 더구나 지금은 경기부진이 이어지면서 기업의 자금수요가 없을 때다.
금융기관들은 넘쳐나는 돈을 굴릴데가 없자 주식투자를 늘려 최근의 주가상승에 한몫 했는가 하면 금융기관들끼리 서로 상대방의 고수익 금융상품에 투자하면서 예금계수를 부풀리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결국 이번 금리자유화의 성패는 정부의 예측대로 내년 상반기에 경기가 조금씩 살아난다면 그때 가서 판가름 날 것이다.
경기가 살아나면 자금수요가 일어 금리가 오를 것이고 이때의 「자연스런 금리상승」을 우리 경제가 어느 정도나 「용인」하고 「흡수」할 수 있느냐에 금리자유화의 성패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정부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한국은 93년 12월말 이전의 상태로 금리자유화 조치를 후퇴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도 해놓은 상태다.
따라서 내년초에 경기회복과 금리상승이 맞불려 일어날 때 통화·금리·환율·재정 등에서의 「정책조화」를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이냐가 바로 금리자유화 성패의 열쇠가 된다.
과거와 같은 「금리규제」로의 회귀는 이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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