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군수 공적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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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옛 선현들은 선정을 베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 애민정신은 기본적으로 청렴·신중·근면의 세가지를 바탕으로 한다. 청렴하지 않고,신중하지 않으며,근면하지 못한다면 백성을 다스릴 자격이 없다는 일깨움이다.
선정을 베풀기 위한 그같은 기본적 조건은 두말할 나위없이 덕에서부터 출발한다. 덕을 앞세우지 않고서는 백성을 올바르게 이끌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정자들이 베푸는 덕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크게 나뉜다. 앞의 것은 덕을 쌓기 위한 덕이요,뒤의 것은 남몰래 쌓는 덕 곧 음덕이다. 중국 전한시대의 학자인 회남자가 남긴 말 가운데 음덕유이명이란 것이 있다. 음덕은 귀에 울리는 소리 같아서 자기만 알고 남은 모른다는 뜻이며,이것이 덕을 쌓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예부터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음덕을 쌓은 관리들이 현직에서 물러날 때나 세상을 떠날 때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해 송덕비을 세웠다. 그러나 백성들의 뜻이라 해도 그 절차는 매우 까다로웠다. 주사가 그 음덕의 내용을 심사해 왕의 허가를 받은 다음에야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이따금 백성을 위협하거나 자신의 재물을 들여 억지로 송덕비를 세우는 예도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세우는 송덕비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백성들의 뜻에 따라 세워진 송덕비도 공덕과는 무관한 경우도 종종 있어 정말 음덕을 쌓은 사람들 가운데는 백성들이 송덕비 세우려는 것을 극구 사양한 일도 적지 않았다고 전한다.
전라남도지역에서는 최근 시장·군수들의 각종 공적비가 54개나 되는 것으로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 지난 82년 무안군의 공적비 건립과정에서 말썽이 일어나 내무부가 시장·군수의 공적비는 세우지 말라고 강력하게 지시했음에도 재임중인 시장·군수의 공적비만도 16개에 달한다는 것이다.
그 시장과 군수들이 얼마나 선정을 베풀고 음덕을 쌓았는지는 알 수 없으되 재임중인 사람들의 공적비는 아무래도 모양이 우습다. 그 지역에 공적비를 세워줄만한 관리들이 그렇게 많았다면 전국적으로 모범이 될 법도 한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니 더욱 가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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