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모더니스트(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19세기와 20세기 문학을 구분하는 이론으로서 주목할만한 것은 객체의 진실과 주체의 진실에 접근하는 미학으로서 19세기 문학이 사실주의를 추구했던데 비해 20세기 문학은 모더니즘을 추구했다는 이론이다. 모더니즘은 일반적으로 철학·미술·문학에 있어 전통주의에 대립해 현대적 문화생활을 반영한 주관주의적 경향을 총칭한다. 19세기말 서구문학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모더니즘의 경향은 예술지상주의·기교중심주의·불확실성의 논리·회의주의·절망 등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새로움을 보여주었다. 모더니즘 문학의 절정기는 대체로 1910년대부터 30년대까지를 꼽고 있으며,우리나라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30년대 중반부터였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언어마저 자유롭게 쓸 수 없었던 당시로서는 몇몇 20대 젊은 시인들에 의해 주도된 모더니즘의 문학운동이 가장 이상적인 표현양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무렵 20대 초반의 약관으로 한국이 모더니즘 시를 이끌었던 사람이 김광균시인이었다. 그의 시풍은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을 입기는 했으나 이상의 다다이즘 경향이나 김기림의 초현실적인 급진적이고 파괴적인 요소보다 온건하고 차분한 회화적 이미지에 치중했고,그것이 소시민적 감수성에 쉽사리 동화됨으로써 주목받는 모더니스트의 자리를 굳혔다.
널리 알려져 있는대로 그는 유능한 기업인이기도 했다. 기업과 시라는 이질적인 요소가 그로 하여금 계속 시작에 몰두하지 못하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시대흐름의 변화와 그에 따른 예술경향의 변모가 그의 일관된 시세계에 이따금 브레이크 작용을 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해방후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문단고별 시집 『황혼가』를 낸 60년대가 미국과 유럽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이 등장한 시기와 일치하는 것도 그와 관련해 음미해볼만 하다.
과학의 발달로 인한 우주시대의 열림,그리고 민권운동·반전운동·여성운동 등 예술가들이 급변하는 현실이나 실체를 파악할 수 없을 때 모더니즘은 맞지 않는다는 이념에서 출발한 포스트 모더니즘은 당연히 모더니즘을 밀어냈다. 그러나 모더니즘은 문학사의 한 페이지에 여전히 빛나고 있으며,그래서 마지막 모더니스트 김광균시인의 이름도 언제까지나 기억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