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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맹군 처형대상 1호' 카오 키 월남 총리, 29년 만에 고국땅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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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베트남은 나의 조국입니다. "

기자들에게 귀국 소감을 말하던 노(老)귀성객의 목소리는 떨렸다. 1975년 4월 사이공(현 호치민) 함락과 함께 망명길에 올랐던 구엔 카오 키 전 남베트남(월남)총리가 14일 조국 땅을 다시 밟기까지에는 28년8개월의 세월이 흘러야만 했다. 73세의 노인이 되어서 돌아온 그의 도착지는 청춘 시절 전투기를 몰고 수없이 이.착륙을 거듭하던 호치민시 탄손누트 공항이었다.

키의 조국 방문은 베트남 정부가 최대의 명절인 구정을 앞두고 '인도적인 견지'에서 관광비자를 발급해 줌에 따라 성사됐다. 몇 차례 비자발급을 거부당했던 그의 입국은 현 베트남 정부가 경제 부흥을 위해 자본과 기술력을 가진 해외 교포들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펴온 화해 정책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프랑스 군사항공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키는 공군참모총장으로 재직 중이던 63년 당시 고 딘 디엠 정권의 축출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면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이후 한차례의 쿠데타에 가담했고 구엔 반 티우 정권에서 총리와 부통령을 역임하는 동안 철권통치와 부패, 문란한 사생활 등으로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월맹군의 처형 대상 1순위였던 그는 월남 패망 직전 헬리콥터를 타고 미군 항공모함으로 도주해 목숨을 건졌다. 이후 캘리포니아에 정착해 주류판매.어업 등 사업가로 변신했고 베트남 공산정권을 비판하는 책을 여러 권 썼다.

이 같은 전력 때문에 키의 귀국은 현 베트남 정권에 반대하는 해외 베트남 교민들 사이에서 '변절'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베트큐'라 불리는 2백만여명의 해외 베트남 교민들 사이에선 "반인권적이고 부패한 정권을 승인하는 결과가 된다"며 그의 출국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키는 "나의 귀국이 베트남 국민에게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게 될 것"이라며 "과거의 전쟁에 집착하는 것은 베트남의 미래를 위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판을 일축했다. 귀국 후 30여년 전의 경호원을 다시 만난 그는 하노이 근교의 고향을 방문하고 귀국할 예정이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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